brunch

1평, 3평, 7평

평수의 철학

by 글사랑이 조동표

1평, 3평, 7평

- 평수의 철학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관은 1평도 채 되지 않는다.

남겨진 삶의 흔적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끝은 대개 그만하다.


문득 내 젊은 날의 ‘1평’을 떠올린다.

총각 시절, 봉천동의 오래된 집.

일본 연수 후 귀국할 때 친구 K가 잡아준 그 방은, 한때 미스코리아 진 장윤정 양이 서울 대회에 참가하러 머물렀던 곳이라 했다.

그 말을 듣고 괜히 방이 조금은 넓어 보였으나, 현실은 비키니 옷장 하나 겨우 들어차는 1평의 공간이었다.


밤에 자다 몸을 돌리면 벽과 그대로 부딪혀 깨던 곳.

1988년 당시 보증금 100만 원, 월세 7만 원.

세상 좁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방이 좁았다.

그렇지만 그 방에서 나는 미래를 꿈꿨고,

그 꿈이 나를 세상 바깥으로 이끌었다.


키가 165cm라도 좁은데 나는 170cm가 넘는다.

세월이 흐르며 평수는 늘었다.

결혼을 하고, 봉천동 다세대주택 반지하를 거쳐 2층 집으로 옮겼다. 운 좋게 분양에 당첨되어 분당에서 내 집 마련을 하고, 4층 빌라, 그리고 12층 아파트로 옮겨 갔다.

14평부터 27평, 38평에서 48평까지, 머무른 공간의 크기는 다양했다.


그런데 묘한 사실 하나.

집이 아무리 넓어도 내 방은 언제나 3평.

대학 시절 자취방도 3평이었고, 직장 생활 내내 집에서는 3평짜리 방에서 살았다. 임원이 되어 사무실에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겼을 때도 3평이었다.

지금 서재도 3평이다.

사람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결국 이만큼이면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3평의 이미지

은퇴 후 사무실을 고를 때도 고민 끝에 선택한 크기는 7평.

아들도 7평 오피스텔에서 산다.

해외에 있는 딸도 7평짜리 원룸에서 자기 세계를 만들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은 크기보다 ‘의미’로 채워진다는 것을, 자식들을 보며 다시 느낀다.


7평의 이미지

그러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결국 1평도 안 되는 곳에 누워 생을 마감한다.

재벌 총수나 대통령이라 해도 그 사실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집착하는 평수의 크기는 정말 인생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을 살찌우는 곳은 평수가 아니라 그 평수를 살아낸 ‘마음’의 크기라고.


1평에서 꿈을 꾸던 청년은,

3평에서 일을 하였고,

7평에서 다시 제2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3평의 방에서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은 늘 바뀌어도, 그 공간을 채우는 ‘나’는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인생의 평수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내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3평의 방에 앉아, 내 인생의 가장 넓은 공간을 펼쳐 본다.


글 속에서.

기억 속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이미지: 네이버 참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