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인생의 문 앞에서 서성일 때
- 삶과 죽음
엊그제, 텔레비전 화면에서 국민 배우 이순재 선생님의 부고 소식이 흘러나왔다.
드라마와 무대 위에서 우리에게 수십 년간 삶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던 분.
늘 ‘어르신’의 이미지로 존재했지만, 어딘가 영원히 살아 계실 것만 같았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또 한 소식.
아나운서 출신 국회의원 변웅전 선생님, 향년 85세로 타계.
단정한 말투, 강단 있는 어조로 젊은 시절의 나에게 ‘품위’라는 단어를 가르쳐 준 분이었다.
그 소식을 들으며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싸했다.
마치 내가 아는 시대의 일부가 조용히 퇴장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때 또 하나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 친구의 어머니가 92세를 일기로 작고하셨다는 소식.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늘 밥 한 그릇 더 떠주시던 분, 말없이 등을 도닥여주던 그 손길이 떠올랐다.
이렇게 며칠 사이에 내 삶의 여러 페이지와 연결되었던 세 분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분들이 떠나는 걸 보며, 나는 문득 멈추어 선다
이순재 선생님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 연기는 내 마음이 늙을 때 비로소 끝난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숫자가 멈추는 순간은 그 어떤 의지로도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변웅전 선생님 역시 늘 곧은 자세였다.
명랑운동회에서는 허허허 웃으며 진행하였지만, 정치의 한복판에서는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를 냈던 분.
그의 마지막 문장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 쓰이지 않는다.
친구의 어머니는, 오 남매를 키우며 조용히 세월을 건너온 분이었다.
누군가의 밥상이 되었고,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었고,
누군가의 인생을 묵묵히 지켜본 분.
어쩌면 가장 평범한,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삶이었다.
이렇게 이름도 생도 다른 세 사람의 죽음을 한꺼번에 마주하고 나니 가슴속에서 오래된 질문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든다.
“인생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익숙한 것들과 작별을 연습하며 산다
누군가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살아가고, 누군가는 가족과 동네의 작은 울타리 속에서 그저 성실하게 하루를 쌓아간다.
하지만 그 삶의 모양이 아무리 달라도 마지막 장면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과,
우리가 쌓아놓았던 것들과,
우리가 품었던 꿈과 기대와 후회까지
모두 내려놓고 한 걸음씩 떠나가는 일.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내 마음 깊숙이 묘한 착잡함을 남긴다.
누군가의 생이 끝났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의 떠남 속에서 결국 내 미래의 한 조각을 미리 보는 것 같아서.
삶은 멀리서 보면 흐름이고, 가까이서 보면 하루다.
이순재 선생님의 91년,
변웅전 선생님의 85년,
그리고 친구 어머니의 92년.
그 긴 세월도 결국 하루하루가 모여 완성된 것일 테다.
젊을 때 속도에 쫓기며 살던 우리도
언젠가 그처럼 잔잔히 마무리되는 날을 맞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조금 더 사람의 손을 잡고,
조금 더 마음을 들여다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부고는 슬픔이지만, 동시에 남아 있는 우리에게 “너는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니?” 하고 묻는 질문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떠나지만
남은 우리는 계속 밥을 먹고,
출근하고,
사진을 찍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잘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그저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요즘은 더 크게 와닿는다.
오늘 나는 세 분의 이름을 조용히 마음속에서 떠올려본다.
그분들이 남기고 간 긴 생애의 흔적을 잠시 가슴에 새겨본다.
그리고 천천히,
내 삶의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