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하지 않은 방문

인연과 집착

by 글사랑이 조동표

연락하지 않은 방문

- 인연과 집착


얼마 전,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오래 알고 지낸 일본인이 한국에 다녀갔다는 것이다.

그도 나처럼 나이가 적지 않다. 몇 살 위이긴 하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은퇴 이후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그를 만났다.

단둘이 만난 적도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일 때도 늘 그를 불러 자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가 한국에 왔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 연락 없이 돌아갔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처음엔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이 올라왔다.

‘어떻게 나에게 한마디도 없을 수 있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곧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았다.

그의 한국 방문 목적은 명확했다.

업무였다. 비즈니스였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굳이 시간을 내어 연락을 해야 할 의무도, 약속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걸까.

왜 ‘한국에 왔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한 것이 이렇게 섭섭한 걸까.


생각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어쩌면 나는 무의식 중에 이런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 이 공간 어딘가에는 내가 중심에 서 있고,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한국에 오면 마땅히 나에게 알리고,

혹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바빠서 못 봤다, 미안하다”

한 마디쯤은 건네주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우정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존중받고 싶다는 마음일까, 혹은 나도 모르게 쌓아온 관계에 대한 소유 의식일까.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더 단순해질 줄 알았다.

필요 없는 감정은 자연히 떨어져 나가고, 남은 것들만 가볍게 품고 살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마음은 더 예민해지고, 작은 일에도 지난 시간과 정이 함께 묻어 나온다.


지금도 그 섭섭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옅은 기운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감정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사람은 각자의 삶의 속도로 오고 간다.

모든 방문이 인사로 이어질 필요는 없고, 모든 인연이 확인되어야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아야 할 나이다.

연락하지 않은 방문을 이해하는 법, 말하지 않은 마음을 굳이 확인하지 않는 법.


섭섭함이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조용히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이가 들며 배우는 또 하나의 예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