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면 서울로 가는 나라, 이게 정상인가?

의료와 교육 집중이 만든 또 하나의 망국 시나리오

by 글사랑이 조동표

병들면 서울로 가는 나라, 이게 정상인가?

- 의료와 교육 집중이 만든 또 하나의 망국 시나리오


언젠가부터 병이 나면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울로 향한다.

진료 예약이 몇 달씩 밀려도, 왕복 교통비와 숙박비가 더 들어도, “그래도 서울 큰 병원이 낫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된다.

이 믿음은 언제부터 이렇게 단단해졌을까.

과거엔 교육이 그랬다. 지금은 의료다.


- 환자들의 서울 집중, 지방의 슬럼화


지방 병원은 환자가 없고, 환자가 없으니 의사가 떠난다.

의사가 떠나니 다시 환자가 줄어드는 악순환.

의료의 공동화(空洞化)는 더 이상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감 현실이다.


문제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수도권 대형병원 의존성은 오히려 위험을 키운다.

과밀한 병동, 짧은 진료 시간, 인턴·레지던트 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오진과 병원 감염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이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은 늘 유지된다.

이 믿음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교육, 의료가 한 덩어리로 결합된 수도권 가스라이팅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 무너진 교실의 기억


내가 졸업한 전주시의 대형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750명이 넘었다.

운동회 날이면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고, 이름을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교실은 붐볐다.


지금은 다르다.

6학년까지 전교생을 합쳐도 2025년 기준 113명 밖에 되지 않는다.

지방 도청 소재지의 학교가 붕괴 직전에 와 있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균형이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료, 교육, 일자리, 문화.

모든 길은 서울로만 이어진다.


- 빠른 것이 항상 옳은가?


서울은 빠르다.

결정도, 변화도, 유행도 빠르다.

반면 지방은 느릿느릿하다.

하지만 빠른 것이 늘 장점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한국 사회는 늘 단기 성과 중심의 ‘아생연후살타’식 정책을 반복해 왔다.

대학은 학과 이름을 수시로 바꾸고, 아파트 이름엔 영어가 넘쳐난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한국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일본, 미국, 유럽의 장기 플랜과 비교하면 우리는 늘 조급하다.

그 조급함은 결국 우울증, 소외감,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라는 부작용으로 돌아왔다.

많은 ‘루저’를 만들어내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 교육은 무엇을 키우고 있는가


대치동 학원에 집중된 교육, 전공은 묻지 않고 대학 이름만 보고 지원하는 문화.

여기서부터 개인의 한계는 시작된다.


창의성은 어디서 자라는가.

모두가 대학에 가고, 좋은 아파트에 살며, 같은 성공 서사를 좇는 것이 최선일까.


역사를 돌아보면, 민족을 이끌었던 인물들은 대부분 20세 전후에 뜻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는 20대 후반까지 자녀들을 교실에 묶어둔다. 학문보다 학습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정작 사회에 나왔을 때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자생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동양은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서양은 자기 자신을 어필하도록 가르친다.

그 차이는 글로벌 경쟁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 나이 든 세대의 역할은 무엇인가


일본에는 <70세 사망법안>이라는 가상소설이 있다.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 세대 간 갈등과 역할을 묻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노년 세대가 사회적 부담이 아니라 봉사와 기부, 경험의 전승자로 재정의 되는 장면들이다.



한국의 60·70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치권력의 연장이 아니라, 균형과 절제의 감각을 사회에 돌려주는 역할은 불가능할까.


- 우리는 질문을 남긴다


의료의 서울 집중,

교육의 수도권 편중,

빠름에 중독된 사회 구조.


망국의 근원은 정치만이 아니다.

문제는 분명히 보이는데, 누가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는 늘 다음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우리는 오늘도 걱정을 말하고, 글을 쓰고,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세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묻는 사회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서울은 더 붐비고, 지방은 더 비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공백의 비용은, 결국 모두가 나눠서 치르게 될 것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