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신사 경제학

사우나에서 배우는 인생의 가격표

by 글사랑이 조동표

세신사 경제학

- 사우나에서 배우는 인생의 가격표


나는 주말마다 한 번씩 나를 리셋한다.

영어로 하면 reset, 한국말로 하면 재정비다.

토요일이면 밀린 병원을 돌며 내 몸의 고장 난 부위를 점검한다.

마치 오래된 기계를 정기 점검하듯, 중년의 몸은 그렇게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삐걱거린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는 늘 같다.

사우나.

주로 일요일 밤에 사우나를 간다.

월요일을 새로 시작하기 위한 작은 의식처럼.


입장료는 10년 전 8천 원에서 만 원을 거쳐 작년부터 만 2천 원. 50% 인상되었다.


일요일 밤의 목욕탕은 자녀를 데려온 가족들로 붐빈다. 말간 어린이들의 얼굴과 피부를 보면 나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간 듯싶다.

일주일을 다 써버린 어른들은 마지막 남은 체력을 정리하듯 옹기종기 모여 있다.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일주일의 피로가 서서히 풀린다.

땀과 함께 걱정도 조금씩 빠져나간다.

날이 더워지면 샤워를 자주 하므로, 한 달에 세 번쯤, 열흘에 한 번꼴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내 나름의 생존 리듬이다.


처음 인구 12만 명의 신도시에 유일한 사우나를 찾았을 때, 세신료는 1만 8천 원이었다.

지금은 2만 5천 원이니 10년 사이 거의 40% 가까이 올랐다.

물가는 올랐지만, 내 지갑은 가벼워졌다.

목욕탕 벽에 붙은 가격표는 작은 경제 뉴스다.

오늘의 숫자는 내 삶의 체중을 말해준다.


보통은 혼자 때를 민다.

하지만 가끔, 세신사에게 몸을 맡긴다.

여기 사우나는 세신사 출신이 주인이라서 세신사들의 수준이 높다는 평판이다.

그래서 인근 시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단다.


세신비 2만 5천 원에 2만 5천 원을 더 얹혀주면 30분 마사지까지 추가해 준다.

5만 원짜리 선택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오늘은 그냥 맡긴다.

“요즘 좀 힘들었으니까.” 나를 합리화시킨다.


돈은 사라지지만, 몸은 되살아난다.

이 나이가 되면 이건 사치가 아니라 품위 유지비다.


여기 사우나에는 세신사가 네 명 있다.

모두 60대 전후, 젊어 보여도 50대 중반이다.

그들의 손은 남다르다.

힘을 쓰지 않아도 피로를 정확히 찾는다.

“목이 많이 굳으셨네요.”

“요즘 스트레스 많으시죠.”

몸보다 먼저 삶을 읽는다.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몸을 다뤄온 손이다.


어느 날, 친해진 세신사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먹고살 만해요.”


주말이면 하루 70만 원, 많을 땐 80만 원.

일주일에 하루 쉬는 평일은 그보다 적은 30% 수준이지만 한 달로 계산하면 8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연봉으로 치면 1억을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계속 대기상태이니, 나름 체력 관리도 필요하고 스트레스도 심할 법하다.


땀과 각질 사이에 그들의 인생이 있다.

권리금 수 억을 내고 들어온 자리.

아무나 설 수 없는 자리다.

사우나 안에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때 미는 일은 힘들고, 힘든 일은 돈을 못 번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손끝의 기술, 오랜 경험, 끈질긴 체력이 값이 된다.

노력은 이곳에서 분명히 대가가 있다.


탕 안에 앉아 있으면 별별 사람이 다 지나간다.

회사원, 자영업자, 문신 투성이 건달처럼 보이는 사람, 지친 아버지, 말없는 노인.

모두 같은 수건을 두르고 같은 물에 몸을 담근다.


직함도, 연봉도 탕 안에서는 벗겨진다.

남는 건 피로와 체온뿐이다.


때를 밀고 나와 거울 앞에 서면 피부가 조금 밝아진다.

얼굴도, 마음도 완전히 새로워지진 않지만 조금 나아진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인생은 늘 완벽한 리셋이 아니라 작은 초기화의 반복이 아닐까.


나는 다음 주에도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세신사의 손에 몸을 맡기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생각할 것이다.


“그래, 아직은 괜찮다.”

사우나는 내 몸의 정비소이고, 내 삶의 환기창이다.

세신사는 내 몸의 관리인이고, 내 삶의 동반자다.


사우나는 조용히 경제를 배우는 교실이다.

오늘도 나는 이곳에서 내 마음까지 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