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기준은?
도시는 누구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가?
- 21세기의 기준은?
도쿄 시내버스는 보통 시속 30km로 달린다.
처음 들으면 황당하다.
가뜩이나 막히는 도시에서 더 느리게 달리라니.
그런데 도쿄는 그렇게 움직인다.
속도보다 안전을, 안전보다 고령 보행자의 이동을 중심에 놓았다.
한국의 도시는 여전히 속도와 효율, 시간의 절감과 직결된다.
서울에서 시속 50km는 ‘도시의 권리’처럼 여겨진다.
그 기준으로 보면 도쿄의 버스는 거의 ‘버스 경주’의 반대편에 서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속도는 단순히 도로 규제가 아니라 도시가 누구의 속도에 맞춰져 있는가를 드러낸다.
- 65세는 정말 고령인가
일본이 시속 30km를 존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노인들의 낙상 사고, 반응 속도, 균형 잡기, 승하차 시간, 회복력.
의학적 지표와 생활 지표가 도시 설계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반문이 등장한다.
65세는 과연 고령인가.
평균 기대수명이 84세에 이르는 시대에 ‘65세 = 고령’은 20세기의 개념이다.
세계 보건기구와 OECD는 이미 노년 기준을 70~75세로 재조정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사람들은 더 과감하다.
“80부터 고령”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그만큼 세대의 기능 격차는 과거보다 작아졌다.
- 통영 고속도로의 개미 한 마리 없는 시간대
도시가 늙는 문제와 속도의 문제는 사실 한 덩어리다.
한밤중에 통영으로 가는 고속도로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시간대가 있다.
그럴 때조차 110km 제한속도는 그대로다.
도시는 밀도와 시간, 연령과 기능, 위험과 효율을 모두 하나의 숫자로 해결한다.
여기서 가능한 질문은 많아진다.
왜 구간별로 속도를 다르게 하지 않는가.
왜 시간대별로 효율을 다르게 적용하지 못하는가.
왜 위험이 낮은 공간에서조차 자유가 부여되지 않는가.
도쿄의 시속 30km가 고령자를 위한 감속 도시라면, 한국은 효율을 위한 가속 도시다.
둘 사이에 그 어떤 중간 단계도 없다.
- 노년은 언제 생산성을 잃는가
도시가 늙는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은 몇 살까지 생산적인가.
노쇠는 60세가 아니라 75세 즈음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근육량 감소는 건강수명을 끌어내리고 건강수명은 곧 이동권을 좌우한다.
근육은 연금보다 강한 자원이다.
한국의 정년이 60세에 묶여 있는 동안 일본은 70세 정년을 논의 중이고, 덴마크·싱가포르·노르웨이는 ‘정년 폐지’로 넘어가고 있다.
노년은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시점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재배치되는 시점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문제는 청년 일자리다.
그러나 한 연구는 노년 노동이 청년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직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청년은 탐색과 속도, 노년은 판단과 지속의 역할을 맡는다.
노동시장은 결국 생애 재설계의 문제인 것이다.
- 정답은 아직 없다
도쿄의 시속 30km를 느리다고 욕할 수도 있고,
한국의 효율 중심 도시를 비판할 수도 있다.
둘 모두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이다.
65세를 고령으로 볼 것인가.
80세부터 노년으로 볼 것인가.
정년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도시는 누구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가.
효율과 안전 사이에 틈은 있는가.
청년과 노년의 일자리는 공존 가능한가.
이 질문들이 모이면 하나로 압축된다.
21세기에는 늙음의 기준을 다시 정해야 한다
초고령 사회는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도시, 노동과 철학, 존엄과 속도의 문제다.
한국은 이제 그 논의의 첫 장을 열고 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