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발견한 '조금 과장된 진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 광화문에서 발견한 ‘조금 과장된 진실’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습관처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올려다본다.
버스를 타고 지나칠 때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어느새 시선은 늘 그곳으로 향한다.
나라를 지킨 성웅.
민족의 자존심.
교과서 속 인물.
그 위대한 이름 앞에서
우리는 좀처럼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 어느 날 떠오른 사소한 의문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저 칼집, 좀 굵지 않은가?’
처음엔 내가 괜히 트집을 잡는 건가 싶었다.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타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꾸 눈에 밟혔다.
장군의 당당한 자세,
굳게 다문 입술,
바람을 가르는 듯한 옷자락 사이에서
유독 칼집만이 묘하게 튀어 보였다.
- 과장은 거짓이 아니라 배려다
조금 찾아보고,
조금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동상은 멀리서 보라고 만든 것이다.
수십 미터 밖에서도
‘장군의 검’ 임을 알아보게 하려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볼 때도
왜소해 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바람과 세월을 견디게 하려고.
저 굵은 칼집은 거짓이 아니라 ‘배려’였다.
보는 사람을 위한 배려,
시간을 견디기 위한 배려.
-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칼집을 키운다
생각해 보니, 우리 인생도 비슷하다.
이력서는 조금 더 근사하게 쓰고,
성과는 조금 더 강조하고,
힘든 이야기는 조금 덜어낸다.
SNS에는 더 밝은 얼굴을 올리고,
명함에는 더 그럴듯한 직함을 새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칼집을
조금씩 두껍게 만들며 산다.
버티기 위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존중받기 위해서.
-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되는 것
젊을 때는 진짜와 가짜를 엄격히 나눴다.
과장은 허영이고, 포장은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과장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고,
어떤 포장은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광화문 동상의 칼집이 두꺼운 이유도
결국은 오래 서 있기 위해서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다.
- 그 앞을 지나가며
나는 광화문을 지나며 장군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왜 저렇게 굵지?”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아, 저분도 오래 버티기 위해
자기만의 갑옷을 입었구나.’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두꺼워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인생을 견디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오래 버티기 위해
자기만의 칼집을 키우며 사는 건 아닐까.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