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로 잴 수 없는 무게
서른다섯 해 전, 결혼을 결심하던 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한 여자의 인생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현실이 내 마음에 묵직한 돌처럼 내려앉던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느껴가며 온전히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가장의 모습은 오직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는 여섯 식구의 삶을 온몸으로 떠받치고 계셨다.
늘 웃고 계셨고, 늘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 견뎌내셨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셨을까.
그 시절에는 몰랐다.
가장의 미소 뒤에 숨어 있는 무게를.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가장’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집 문제, 자녀 계획, 교육 문제, 직장 문제, 아버지와 장모님을 모시는 문제, 명절을 챙기는 일, 차를 마련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갈등 없이 함께 살아가는 일까지.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선택들이 매일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은 해외 근무 기회를 얻어 가족 모두를 데리고 낯선 땅으로 떠난 적도 있었다.
해외에서 주거 문제며 애들 학교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니 너무나 복잡했다.
그러다 몇 년 뒤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한국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집을 구하고, 동네를 정하고, 아이들 학교를 고민하고, 학군을 따라 이사를 결정해야 했던 시간들.
그때마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선택이 가족에게 최선일까.’
가장의 무게는 저울로 잴 수 없다.
숫자로도,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하루지만, 그 하루를 지탱하기 위해 가장은 수없이 많은 계산과 걱정을 한다.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내라는 든든한 축이 함께 버텨주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있는 이유는 결코 혼자의 힘이 아니다.
오늘같이 날씨가 추울 때면 나는 문득 아버지를 떠올린다.
겨울이면 각 방의 문풍지를 틀어막고 찬바람이 들지 않게 하고, 구들장이 따뜻한지 확인하고, 행여 자식들이 감기라도 걸리지 않았는지 살피고, 눈이 쌓이면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가 길을 치우던 사람.
그 모든 일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가장이니까’ 했던 일들이었다.
요즘은 아파트 생활 덕분에 그런 수고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책임의 무게만큼은 줄지 않았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가장의 부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나도 어느덧 나이 지긋한 아버지가 되었고, 한 가정의 중심이 되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체력이 좋지도 않고, 앞날이 늘 확실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버텨낼 동력이 된다.'
‘가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견뎌내고,
누군가를 위해 선택하고,
누군가를 위해 버텨온 긴 시간들.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 자신을 다독이며,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한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