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선언
술잔을 내려놓은 남자
- 금주 선언
“병은 자랑하는 게 낫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아프고 나서야, 병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최근 협심증 시술을 받고 병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 나는 그 옛말을 떠올렸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이제는 자랑할 만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또래가 되면 심장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명함처럼 오가는 나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발병 과정과 병원에서의 시술 경험을 브런치스토리에 솔직하게 썼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경고등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 글을 읽은 친구들이 가장 놀란 대목은 따로 있었다.
“야, 네가 술을 안 마신다고?”
맞다. 예전의 나는 술자리의 중심이었다. 술잔을 들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었고, 건배사를 외치며 좌중을 휘어잡는 사람이었다.
잔을 비운다는 건 의무였고, 마시지 않는 건 배신에 가까웠다.
소주 세 병쯤은 워밍업이었고, 폭탄주 열다섯 잔도 자랑거리였다.
양주 한 병을 혼자 비운 날도 있었다.
52도 중국 백주를 맥주잔에 가득 채우고 단숨에 들이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외면했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괜찮아”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아직 젊다고, 아직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심장이 멈칫했다.
병원 침대 위에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위험한 줄타기를 해왔는지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술자리에 앉아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잔은 받는다. 형식은 지킨다.
하지만 입술에만 살짝 대고 다시 내려놓는다. 마치 고사를 지내듯 조심스럽게.
처음엔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한 잔도 안 돼?”
“야, 네가 이럴 애냐?”
설명도 귀찮았다.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몸이 먼저야.”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도 바뀌었다.
모임 장소는 삼겹살집 대신 해산물집으로 옮겨갔고, 술 권하는 사람도 사라졌다.
대신 웃으며 잔만 부딪힌다.
마시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해졌다.
그 변화가 고맙기도 하고,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이런 변화 앞에서 문득 오래전 의사들이 농담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남자가 죽음으로 가는 네 단계가 있어요.
첫째, 담배를 끊고,
둘째, 술을 끊고,
셋째, 여자를 멀리하고,
넷째, 사망입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묘하게 현실적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담배는 이미 오래전에 끊었다.
술도 내려놓았다.
세 번째 단계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예전처럼 살면, 다음 단계는 너무 빨리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
술잔을 내려놓는다는 건, 단순히 음주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그건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무모함 대신 절제를 택하고, 허세 대신 생존을 선택하는 일이다.
젊음을 증명하던 방식에서, 남은 시간을 지키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일이다.
나는 이제 술로 분위기를 띄우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웃고, 오래 앉아 있고, 끝까지 함께한다.
이전보다 삶이 재미없어진 걸까?
아니다. 오히려 더 오래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집에 돌아와도 심장이 평온하고, 다음 날 아침이 가볍다.
그게 요즘 내가 얻은 가장 큰 사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예전의 나와 닮아 있다면, 한 번쯤 돌아보길 바란다.
아직 괜찮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지.
아직 버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몸은 말없이 신호를 보낸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무시할 뿐이다.
나는 늦게나마 경고음을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인생을 다시 붙잡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랑스럽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