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직 교회에 가지 않는가

억지 없는 신앙에 대하여

by 글사랑이 조동표

나는 왜 아직 교회에 가지 않는가

- 억지 없는 신앙에 대하여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래 망설였다.

혹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괜한 오해를 사지는 않을지,

여러 번 마음속으로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 질문을 덮어두는 일도

용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변명도, 주장도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이

자기 삶을 돌아보며 적어 내려간

솔직한 기록이다.


- 믿음의 시작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입시를 앞둔 추수감사절, 예비고사를 준비하면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지 않고 고등부 회장직을 수행한 학생은, 졸업 전에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목사님 말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문답집을 외우고 세례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렵부터 집안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를 다니자 부모님도 나가셨고,

부모님이 나가시자 동생들도 자연스럽게 교회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 사람의 선택이 가족 전체의 방향을 바꾼 셈이다.


그 시절의 나는, 나름대로 ‘신앙의 출발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 대학생이 되면서 떠난 교회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에 올라와 명동에 있는 교회를 나갔다.

목사님의 추천이었다.


그런데 전공을 바꾸려고 대학을 자퇴하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군사독재정권의 세상은 시끄러웠고, 보는 눈이 달라진 탓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그곳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세속적이었다.

너무 계산적이었다.

너무 바쁘게 돌아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장면들이 있었다.


평일에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거짓말하고, 욕심부리다가, 일요일이 되면 가장 경건한 얼굴로 앉아 있는 사람들.


죄를 짓고,

헌금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기도로 면죄부를 받는 구조.


그 모습이 나에게는 이율배반처럼 보였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그때부터 나는, 그 무리 안에 섞이기가 싫어졌다.


- 목회자에 대한 느낌, 그리고 거리두기


솔직히 말하면, 일부 목회자들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은 거룩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설교보다 말이 많았고, 신앙보다 인간관계가 앞서는 장면도 많았다.


나는 점점 멀어졌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 60대 중반, 다시 찾아온 질문


세월은 빠르다.


어느새 나는 60대 중반에 들어섰고, 주변에는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머님도 돌아가셨다.

집사 직분을 받으신 상태였다.


요즘, 주변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교회 나가셔야죠.”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이제는 마음 붙일 데가 있어야지.”


심지어 나를 위해 교회에서 기도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는 신앙이 없는 사람일까?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신앙인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여전히,

거짓을 싫어하고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 애쓰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어 한다.


누가 보지 않아도, 내 양심 앞에서는 정직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신앙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신앙일까.


- 억지 없는 신앙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택한 것은

‘교회 없는 신앙’이 아니라,

‘억지 없는 신앙’이었구나.


억지로 가지 않고,

억지로 믿지 않고,

억지로 흉내 내지 않는 신앙.


대신,

하루를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고,

감사할 것을 찾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삶.


그 방식으로 나는 신을 대하고 있었다.


- 형식보다 진심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래도 교회는 나가야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억지로 나가는 예배보다,

정직하게 사는 하루가 더 어렵다는 것을.


형식적인 신앙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삶이 더 힘들다는 것을.


나는 형식 대신 진심을 택했다.


- 아직도 답을 찾는 중이다


이 글은 결론이 없다.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언젠가 다시 교회 문을 열지도 모른다.

아니면 끝까지 이 방식으로 갈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내 삶을 가볍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신앙도 가볍게 만들고 싶지 않다.


- 맺으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신앙이란,

신을 향해 가는 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 걷는 길은 아닐까.


교회에 있든, 없든.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길을 걷는 중이다.

느리고, 서툴고, 자주 흔들리면서.


그래도 멈추지는 않으려 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