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설빔

설렘 없는 나이의 설날

by 글사랑이 조동표

설날과 설빔

- 설렘 없는 나이의 설날


어린 시절의 설날은 단순했다.

새해라는 개념도, 한 해의 계획도, 인생의 방향도 몰랐다.

그저 설빔 하나면 충분했다.


시장 골목에서 맡던 새 옷 냄새,

빳빳하게 풀 먹인 한복의 촉감,

아침 일찍 일어나도 졸리지 않던 긴장감.


전날 밤, 베개 밑에 설빔을 넣어두고 잠들던 기억이 있다.

혹시라도 누가 먼저 입어버릴까 봐,

아니면 아침이 늦어 설날이 이미 시작되어 버릴까 봐.


그때의 설날은

“기다림”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다.


설빔은커녕

원하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설날이 와도 마음이 고요하다.


새 옷을 입어도 새롭지 않고,

새해가 와도 새롭지 않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경제력일까.

나이일까.

아니면 인생의 구조일까.


어린 시절의 설렘은

결핍에서 나왔다.


갖고 싶은 것이 많았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적었다.


1년에 단 한 번,

설날만 허락되는 특별함.


그래서 설빔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허락된 행복”이었다.


지금은 반대다.


갖고 싶은 것은 줄었고

가질 수 있는 것은 많아졌다.


언제든 살 수 있고

언제든 먹을 수 있고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특별한 날이 사라졌다.


행복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또 하나가 있다.


어린 날의 설날은

받는 날이었다.


세배를 하면 세뱃돈이 나오고

어른들은 웃고

나는 이유 없이 중심이 되었다.


세상은 나를 환대했다.



하지만 예순이 넘은 설날은 다르다.

이제 나는 맞이하는 쪽이다.


세배를 받는다.

덕담을 건넨다.

용돈을 준비한다.


누군가에게 설날을 만들어 주는 역할.


설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할이 바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설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설렘을 소비하는 자리에서

설렘을 제공하는 자리로 이동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설날은

세상이 나를 위해 준비된 날이었고


지금의 설날은

내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날이다.


그래서 마음이 조용해진다.


기대가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딘가 허전할까.


아마도 설렘이 사라진 이유는

행복의 총량이 줄어서가 아니라

시간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우리는

앞으로 올 시간을 기다렸다.


지금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떠올린다.


기다림은 설레고

회상은 잔잔하다.


그래서 명절은 더 이상

두근거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조용한 풍경이 된다.


이제 설날은

나에게 기쁨을 주는 날이라기보다

삶을 확인하는 날에 가깝다.


누가 건강히 왔는지,

누가 조금 늙었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문득

내 부모가 느꼈을 설날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도 아마

설레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설렘이 없는 설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설렘은 청춘의 감정이고

평안은 세월의 감정이니까.


어쩌면

설레지 않는다는 것은

삶이 안정되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설빔을 기다리던 시절이 지나

사람을 기다리는 시절로 왔기 때문이다.


어린 날의 설날은

새 옷을 입는 날이었고

지금의 설날은

마음을 입는 날이다.


모두 평안한 명절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