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미아 제2부 4장 2화

방향을 잃은 자만 방향을 얻는다

by 글사랑이 조동표

강남역 미아 제2부 4장 2화

- 방향을 잃은 자만 방향을 얻는다


1. 숫자 밖으로 밀려난 사람


퇴직 후 몇 달, 그는 시간을 늘려 놓은 사람처럼 살았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고, 서둘러 외출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난 뒤의 사람처럼.

아니, 정확히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사람처럼.


뉴스를 틀면 중국이 흘러나왔다.

환율, 무역지표, 성장률, WTO 협상, G2, 시진핑.

숫자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그러나 이제 그 숫자들은 그를 호출하지 않았다.

그는 그 안에서 역할도, 책임도, 권한도 없는 사람이었다.


숫자는 여전히 움직였지만 그의 이름은 빠져있었다.


2. 출구와 방향


늦겨울 오후, 그는 2호선에 올랐다.

행선지는 정하지 않았다.


지하철 안내음성이 울렸다.

“다음은 강남역입니다.

Next stop is Gangnam Station.

次は江南驛です.

下一站是江南站.”

그는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이 열리고, 군중이 쏟아져 나왔다.


유리벽 너머로 출구 번호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1번, 2번, 3번, 4번, 5번... 11번, 12번.

각 출구는 서로 다른 방위와 상권, 건물, 업종, 사람들의 밀도를 향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출구 하나도 정치였다.


동사장에게 가는 길.

정부 관계자와 만나는 길.

학회 사무국으로 향하는 길.

병원으로 가는 길.

외자기업 클러스터로 가는 길.


방향은 곧 이해관계였고,

한 걸음은 곧 메시지였다.


일본에서는 출구가 질서였다.


도쿄 본사로 이어지는 길.

대학병원 연구실.

조용한 료테이(料亭) 접대 자리로 가는 길.

호텔로 돌아가는 길.


표지판은 정확했고, 동선은 정갈했다.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누구도 노골적으로 힘을 과시하지 않았다.

방향은 분명했지만, 그 방향을 선택하는 기준은 말보다 공기 속에 있었다.


‘일본은, 목적은 분명하지만 속내는 보이지 않는 나라다.’


한 발을 들이기까지 보이지 않는 신뢰의 층위를 통과해야 하는 나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글사랑이 조동표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고, 인간다움을 찾으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미래의 삶에 공헌하며, 행복하게 살기.

76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5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