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의 의미에 대하여
장소가 나를 만든다
- '곳'의 의미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 생각한다.
이름이 있고, 직업이 있고, 관계가 있고, 그 모든 것이 나를 규정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이기 이전에,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가 아닐까.
집에 있으면 나는 가장이다.
책임과 보호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회사에 가면 임원이 된다.
결정을 내려야 하고,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자리다.
교회에 가면 신자가 되고,
빈소에 가면 조문객이 된다.
같은 몸, 같은 사람인데
장소가 바뀌는 순간
내 이름 위에 얹히는 역할이 달라진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직함’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통해 직함을 부여받는다.
회의실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되고,
강단에 서면 발표를 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된다.
어떤 단체의 자리에 앉으면
그 조직의 이름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존재 자체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부여한 맥락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 이전에
어디에 서 있느냐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개인이지만
어떤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그에 걸맞은 책임과 의미를 입는다.
그곳이 청와대나 국회 같은 국가의 중심이라면
그는 국민을 생각해야 하고,
그곳이 기업의 중심이라면
그는 조직을 대표해야 한다.
장소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역할을 호출하는 무대다.
생각을 조금 더 밀어붙이면
이런 질문에 닿는다.
나는 지금
어떤 ‘곳’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사람은 흩어져 살아간다.
각자의 일자리, 각자의 가정,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지만 그 흩어짐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며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어쩌면 인생이란
하나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여정이 아니라
여러 장소를 지나며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서 있는 이 ‘곳’을 한 번 더 바라본다.
이곳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나는 그 요구에 얼마나 응답하고 있는지.
장소는 말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사람을 바꾼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이미지: 챗지피티, 구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