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는 나이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나는 꼰대인가?
- 꼰대는 나이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회의실 공기는 언제나 비슷하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메모를 한다.
그러다 높은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은 잠시 멈춘다.
그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이 더 오래 살았기 때문일 때가 있다.
바로 그 사람이 '꼰대'.
‘꼰대’라는 단어는 묘하다.
원래는 학생들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그리고 늙은이, 즉 기성세대를 속되게 말하는 의미였다.
즉, 나이 든 세대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자기 방식만 옳다고 고집하며 권위적인 태도로 조언이나 지시를 강요하는 사람이 꼰대.
이 꼰대에는 젊은 꼰대도 있고, 나이 들어도 꼰대가 아닌 사람도 있다.
결국 이 단어는 시간이 아니라 태도를 가리킨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깊어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굳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대화의 시작을 이렇게 연다.
“나 때는 말이야..., 우리 때는 그랬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현재는 사라지고 과거가 기준이 된다.
지금의 질문에는 이미 지난 시간의 답이 먼저 도착해 있다.
배우기보다 가르치려 하고, 이해하기보다 판단하려 한다.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대신, 맞았다는 기억을 붙잡고 있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의 경험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리고 그 순간, ‘꼰대’는 완성된다.
꼰대를 만드는 것은 나이가 아니다.
반성이 멈춘 자리, 그 자리에 꼰대가 앉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이 쌓이는 일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것은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쌓인다.
그러나 성숙은 선택이다.
생각을 고정시키는 순간 사람은 늙고, 생각을 흔드는 동안 사람은 자란다.
어쩌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꼰대가 되는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 멈추는 순간’ 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의 말을 듣는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이해하려고 듣고 있는가? 아니면 반박하려고 기다리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나는 꼰대인가?
*이미지: 챗지피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