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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최현지 Feb 01. 2024

[서평]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읽고

[최작가, 그녀가 사는 세상]

#광고 #협찬 #서평 #book
< #사이보그가족의밭농사 >
#황승희작가 / #푸른향기 펴냄

-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제목부터가 신선하고 재밌었고, 잔잔한 에세이 보다 생동감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란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조기 은퇴 후, 한 사람의 아내와 엄마가 아니라, 두 사람의 딸이자, 독립된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멋지고도 용감하다. 황승희 작가는 글로만 보면 50대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다. 뭔가 20대의 생기로움과 도전 정신이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의 솔직하고 담백하지만 쿨한 느낌이 좋았고, 가슴 한켠에 고이 꿈꾸고 있는 귀농, 귀촌의 꿈이 모락모락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30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일반적인 30대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잦은 밤샘과 과도한 방송이나 섭외 업무 량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서, 잘해서 오랫동안 이어온 방송 작가란 직업이 어느덧 꿈이 아니라 일이 되어 버리니까 때때로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5년간 존버정신으로 현직에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도시를 떠나 농촌 여행을 즐기기 때문 일거다. 왠지 여행에서 이런 왕언니를 만나면 농촌의 매력에 한번 더 빠지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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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텃밭 농사하며 좋았던 것은 아빠를 전에 없이 자주보니 아빠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날은 잊지 못한다. 외도, 게으름, 노름으로 모든 가산을 탕진한 난봉꾼이 할아버지였다는 긴 이야기 끝에 아빠의 진한 소회를 들었을 때는 내 가슴이 찡했다. “내가 한 번도 말한 적 없다만 이제사 내 처음 말하는데. 네 할아버지는 말이, 내 아버지지만 정말이지 부모로선 참 빵점이었다. 허나 원망은 나는 안 한다. 내 부모인 걸 어쩌냐. 나는 다 나 하기 달렸다고 믿는다. 난 평생 그 말대로 살았고, 내가 열심히만 살면 다 잘 되겠지 했다. 네 엄마랑 난 아주 진짜 열심히 살었다.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겄냐.” 할아버지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빠의 생각을 직접 들은 건 그날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한 남자를 보았고, 얼굴의 주름이 훈장처럼 빛난다는 걸 알았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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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독거노인. 외롭지 않을까? 외로울 때도 있다. 오늘 밤을 못 넘기고 독고사할 것 같은 날도 있었더랬다. 그래도 실보다 득이 월등히 많다. 또한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인가라는 인간적 연민도 있다. 그럴수록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나 자신을 아끼고 위하면서 밝게 살다 보니 내 삶이 무척 사랑스러워지는 마법의 순간이 금방 찾아왔다. “이만하면 나는 너무 괜찮은 사람.” 사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또 늘 아프지만, 외로움도 잘 타지만, 그래도 혼자가 좋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 취미 몇 개, 나의 고양이들,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엄마 아빠. 나는 좋은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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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뷔의 팔베개는 대일밴드 같다. 아무 일 없는 일상마저 고된 나에게 나뷔가 대일밴드를 붙여주는 것 같다. 상처는 아직 덜 아물었어도 계속 계속 그다음 어떤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대일밴드. 누구나 자기만의 대일밴드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저절로 목숨이 살아지지는 않으니까.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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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는 아버지, 삼촌과 함께 오이 농사를 짓는다.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농사는 쉴틈이 없다고 한다. 워낙 쉽지 않고 힘든 일이 농사이기에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라고. 농사꾼 아빠가 있어서 자신은 가능한 거라고. 그녀에게 아빠, 엄마는 부모이지만, 때로는 친구가 되고, 삶의 동반자가 되어주시는 듯하다. 돌싱으로 돌아온 딸, 회사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 딸, 일반적인 대한민국 50대 여성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에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 책을 읽는 내내 즐겁고 평화로웠다. 짠하고 찐한 느낌이 아니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의 감동으로 그녀의 삶이 그려졌다. 언젠가 그녀가 또다른 책을 낸다면 그땐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왕언니, 참 멋져요. 그래서 좋아요.’ 나날이 새롭고 신선한 에세이를 출판해주시는 출판사 <푸른 향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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