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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최현지 Nov 28. 2023

[에세이 서평] <메스를 손에 든 자> 읽고난 후

[최작가,  그녀가 사는 세상]

<메스를 손에 든 자>
이수영 지음 / 푸른 향기

하루에도 몇번 씩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외과의사의 고뇌와 진심이 담긴 닥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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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시작과 죽음의 끝에서 인간이 가장 처음 만나는 인연이 바로 ‘의사’다. 태어날 때는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서, 죽음의 끝에서는 질병과 사건, 사고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의사 앞에서, 사망 신고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의사는 생애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함께하는 직업이기에 귀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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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스를 손에 든 자>는 외과 전문의 이수영 의사의 진솔한 닥터 에세이다. 책 속에는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외과 의사의 일상과 그가 만난 많은 환자들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오랜 기간 의학방송을 제작하면서 대학병원부터 지역병원, 동네 의원까지 다수의 병원의 의사들을 만나왔고, 그 시간 속에서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화려한 수술 경력이나 인지도가 아니었다. 환자에게 친절하고, 환자와 함께 하는 인간미 넘치는 의사이다. 보통 외과 의사하면 메스로 인간의 배를 가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함이 묻어나는 닥터, 과거 드라마 <하얀 거탑>에 극 중 외과 의사인 장준혁을 연상하지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외과의 이미지도 달라진 듯 하다. 외과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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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의 순간은 전혀 극적이거나 혹은 낭만적이지 않다. 여보 사랑해, 먼저 가서 미안해, 우리 아들을 잘 부탁해, 하고 두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다가 꼴까닥 숨이 넘어가면 심전도가 갑자기 심정지 상태로 변하고 의사는 저 먼발치에서 고개만 떨구는 그런 죽음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대다수의 환자들은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전할 새도 없이 본인이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음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갑작스레 상태가 나빠진다. 의료진은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보려 기도 삽관을 하고 승압제를 달고 투석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하지만, 최선의 노력이 항상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아서 그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결국 죽게된다. 임종 직전의 환자는 혹시 모르는 소생의 가능성을 붙들고 시행하는 온갖 의학적 처치 속에서 정작 보호자와는 철저히 분리되며, 중환자실에서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한 끝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그제야 보호자가 환자의 곁을 지킬 수 있게 된다. P.149

진실을 주는 것으로 나의 역할은 끝이다. 나머지는 환자와 주변인들의 몫이다. 스미노 요루의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은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일상을 보상해 주려 필사적인 가족들보다 진실을 알면서도 일상을 함께해주는 친구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암 환자들에게 내가 기어코 수술을 권하는 것도, 그들의 귀중한 남은 삶에 짧게나마 일상을 마련해주고픈 이유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외과의사로서 해 줄수있는 마지막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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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사실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집도’하는 ‘내 수술’이다. 전공의, 전임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수술을 경험하게 해주며, 그 모든 과정과 결과까지도 책임지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일부 과정을 전공의, 전임의들에게 맡기더라도 내가 했을 때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만드는 것까지가 내 임무이고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제 이름을 걸고 하는 모든 수술은 제가 합니다. 그러니 걱정 붙들어 놓으세요.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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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란, 환자를 살리는 의사, 환자를 배려할 줄 아는 의사, 환자에게 긍정적인 확신을 줄 수 있는 믿음직한 의사다. 이수영 닥터를 통해 의사와 환자의 사이에서 삶과 죽음 앞에서 의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금 느꼈다. 웃을 일 보다 울 일이 많을 직업일지라도, 책을 읽으면서 외과 의사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뇌의 시간들을 보내고 동시에 수술실 안과 밖에서 벌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아는 것이 외과 의사라는 직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수술실 안의 의사는 차갑고 냉철하지만, 수술실 밖의 의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환자가 의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거다. 끝으로 머리가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서 가는 의대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의대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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