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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Sep 06. 2024

몽골에서의 첫날밤

푸르공과 함께 하늘로 날라 올라갈것 같은...

서울의 찜통더위에 지쳐 떠나온 몽골.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를 반겨준 것은 서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선선한 바람이었다. 일주일 동안은 더위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몽골의 8월 중순 날씨는 낮에는 약 25도, 밤에는 7~8도 정도로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했다. 어떤 옷을 챙겨야 할지 고민했지만, 추운 것보다는 따뜻한 게 낫겠다 싶어 경량 패딩까지 포함해 4계절 옷을 모두 준비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드디어 푸르공 앞에 섰다. 남들의 여행기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 차량이다. 네모난 디자인에서부터 몽골 여행의 낭만이 느껴졌다. 푸르공을 타고 떠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푸르공은 몽골에서 인기 있는 소형 밴으로, 러시아에서 수입한 차량이라고 한다. 네모난 디자인과 튼튼한 내구성 덕분에 몽골의 험난한 도로 환경에 딱 어울렸다. 특히 비포장 도로나 산악 지역에서도 잘 견디는 차량으로, 단순한 구조 덕분에 고장이 나도 수리가 쉽다고 한다. 게다가 4륜구동이라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푸르공이 몽골에서 왜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하늘로 날아 오를것 같은 끝없는 로드

푸르공의 트렁크가 열리자, 이미 실려있는 짐이 있는데 우리의 28인치 캐리어 4개가 들어갈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기사님은 테트리스 고수처럼 짐을 능숙하게 배치했고, 로프로 단단히 고정했다. 그의 손길에 우리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짐을 모두 실은 뒤, 우리는 푸르공에 올라탔다. 경유 냄새로 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미리 챙긴 멀미약과 뽈록이 방석 덕분에 안심했다. 한국어가 능숙한 가이드 자야와 한국어가 서툰 기사님 님하의 인사를 받으며 차량은 출발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광활한 대지가 눈앞에 펼쳐 졌다. 왠지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3시간쯤 달리다 광활한 벌판에 차를 세웠다. 가이드가 화장실을 안내했지만, 막상 가리킨 곳은 초록색 네모 상자 같은 화장실. 가까이 가니 암모니아 냄새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 초원의 자연 화장실을 선택했다. 세상에나 어린시절 시골논에서 뛰어놀때나 하던 자연화장실을 ...

내스스로 민망했지만 모른척하고 차량에 올라탔다. 혼자 입가에 웃음이 세어나왔다.

자연과 어우러진 초록색  화장실

몇 시간을 더 달려 작은 소도시 식당에서 첫 몽골식 식사를 했다. 양고기 계란볶음과 양고기 김치 계란볶음을 시키고, 수태차도 한 잔 마셔봤다. 양고기에서 살짝 누린내가 났지만 먹을 만했다. 식사 후, 저녁을 위한 부식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보드카, 레몬, 탄산수, 과일을 사서 아이스백에 담았지만, 얼음을 구하기 힘들었다. 한국처럼 더운 날씨가 아니라서 얼음이 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근처 편의점을 몇군데 돌아 결국 구했다..CU에서 귀하디 귀한 얼음 득탬성공.



앞도 옆도 같은 풍경을 8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곳은 ‘차강소브라’. 몽골 고비사막 지역의 독특한 자연 명소로, ‘흰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다양한 색깔의 암석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일출과 일몰 시기에 가장 아름답다는데, 아쉽게도 일몰은 볼 수 없었다.

차강소브라의 드넓은 초원과 자연이 만들어준 보물

우리는 오늘의 첫 숙소,  여행자게르로 향했다.  간이 화장실과 수돗물이 쫄쫄 나오지만 그래도 간단한 세안은 가능했다. 부족함 속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본다.


게르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바닥에 펼쳐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게르 옆에 테이블을 펴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한 보드카에 손으로 짠 레몬즙을 넣어 하이볼을 만들었다. 삼겹살 한 점을 상추쌈에 싸서 한 입 베어 물고, 하이볼을 한 모금 마셨다. 이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초원에서 먹는 삼겹살에 보드카 하이볼 한 잔, 그 순간은 낭만 그 자체였다. 광활한 대지와 쏟아질 듯한 별 아래에서 삼겹살 한 점을 상추에 싸서 먹고, 시원한 하이볼을 한 모금 마시니, 몽골의 밤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느끼는 작은 사치, 그 여유로움이 그날의 삼겹살과 하이볼을 더없이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의 첫 번째 날은 그렇게 저물어갔고 그날저녁 우리는 몽골의 대자연속에서 별과 함께 잠들어 갔다


[못다 한 이야기]

 

몽골의 첫번째  식사 - 양고기계란볶음과 김치계란볶음
별빛아래에서 먹는 삼겹살~


넓고 넓은 초원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 준 푸르공
저물어가는 몽골의 첫날밤, 하늘은 붉게 물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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