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추억만들기 시작
작년,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한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남겨진 어머니는 긴 시간을 울음과 기도로 보내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삶에 조금이라도 환한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엄마와의 여행을 시작하자.
첫 번째 여행지는 충청남도 삼길포항.
봄볕이 따뜻하게 내려앉던 어느 날, 봄 쭈꾸미 철을 맞아 바다 향이 가득한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곳의 특징은 요즘은 보기 드문, 배 위에서 바로 회를 떠주는 선상횟집입니다.
출렁다리를 따라 갈매기와 함께 걷다 보면, 바다 한가운데 정박한 배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배 위에서 싱싱한 도다리회 한 접시를 받아 들고 엄마와 마주 앉았습니다.
시원한 봄 쭈꾸미 샤브샤브와 함께 도다리회 맛은 바다의 상큼한 봄바람처럼 시원했습니다.
왠지 더 신선하고, 맛도 깊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제게도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대학 시절, 겨울방학이 막 시작되던 때 친구들과 함께 바다낚시를 하러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시골 민박집에 묵었고, 우리가 직접 잡은 망둥어를 주인 할머니께서 매운탕으로 끓여주셨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주름진 손과 얼굴의 할머니였는데,
그 손맛 덕분인지 매운탕 맛도 그 세월만큼이나 깊고 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민박집 방은 마치 할머니 댁 사랑방 같았고, 뜨끈한 온돌 덕분에 바닷바람도 전혀 두렵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민박집도 펜션으로 바뀌고, 알록달록한 조명이 밤을 밝히고 있지만
그 시절의 소박한 분위기와 따뜻함은 마음 한켠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예전처럼 오래 걷거나 활동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고된 농사일과 자식 뒷바라지에 그시절 그 민박집 할머니의 모습과도 흡사하게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하셔서, 차로 이동하고 잠깐씩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중심으로 여행지를 고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로 삼길포항은 딱 알맞았습니다.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 어머니와 함께 보낼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짧게 남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보다, 하루라도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엄마와 함께 걷는 ”같이 걸어 좋은 길“이라는 이름의 기록을.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웃고, 다시 이야기하며, 다시 삶을 살아갑니다.
[사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