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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Feb 16. 2022

'서촌', 어느 길을 걸어도 이야기가 있다.

안국동 서울공예박물관, 송현동 감고당길, 통의동 마을마당

지난 10월 브런치의 첫 글을 올리고 약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24개의 글을 쓰며 브런치에 대한 애착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 동시에 고민도 많아졌다. 자연에 관한 스폿을 담다 보니 어딘가 내 브런치가 단조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글에 담고 싶지만 내가 정해둔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담지 못하는 곳도 생겼다. 그래서 새로운 기획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드디어 오늘 매거진 '시야를 넓게 하고 걷기'를 공개한다. '시야를 넓게 하고 걷기'라는 제목은 2020년 11월에 내가 인스타그램에 썼던 캡션의 일부에서 따왔다. 그날 길을 걸을 때 시야를 넓게 하고 걸으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의식적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여기저기를 보면서 걸으려고 한다. 이 매거진에서는 1) 자연에 오롯이 초점이 맞춰진 공원 같은 장소뿐만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등의 장소도 담을 것이고, 2) 목적을 갖고 들르는 곳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길도 담을 것이다. 앞으로 매거진의 연재를 통해 특정 '동네'의 매력을 담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설렌다. 그 첫 번째 편은 바로 '서촌'이다.



서울공예박물관

2021년 7월, 종로구 안국동에 서울공예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한 일명 '서공박'의 개관 소식은 각종 SNS에서 핫했고, 인증샷은 이어졌다. 나도 동생과 함께 8월 말에 다녀왔다. 그래도 건물 사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못 찍은 건물 사진도 함께 넣어본다.

 

그래도 '자연'을 주제로 운영하는 브런치인지라 단순히 핫플레이스라는 이유만으로 글을 올리지는 않는다. 내가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자연과 어우러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공예품도 많이 감상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건물과 자연의 조화를 더 인상 깊게 봤다. 나처럼 자연도, 건물도 좋아한다면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더욱 배가 되지 않을까 싶은 곳이다.


서울공예박물관에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무가 잘 보이는 곳에 창문이 있었다. 창문 사이로 나무를 보는 것도 좋았고, 작품과 함께 나무를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우리가 간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밖에 돌아다니는데 비가 와서 꿉꿉함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빗물이 맺힌 창문을 두고 나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나는 은근히 단순하다. 자연의 멋을 더욱 멋있게 담아줄 때 기분이 한없이 좋아진다.


건물이 특이해서 솔직히 한 번 가본 걸로는 이 구조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 여기는 두 건물을 잇는 다리가 있는 곳 근처였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이날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공예박물관이라서 천장에 유리 공예품이 달려 있는 디테일까지 너무나 만족스럽다.


계단, 전시실 등 초록색이 있는 곳이면 창문을 다 뚫어둔 느낌이었다. 볼거리가 두 배가 돼서 더욱 즐거운 곳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나와서 아까 그 나무를 구경했다. 나는 브런치를 쓸 때 검색해보면서 글을 작성하는데 이 나무가 400년 된 은행나무이고, 이 공간의 중심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건물의 키워드는 '시간을 걷는 공간'이라는데 400년의 시간과 새로 생긴 건물의 우직함 그리고 놀러 오는 관광객들이 이 키워드를 완성시키는 것 같다.




감고당길

다음은 감고당길이다. 앞서 언급한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나오면 바로다. 이런 길은 엄청 큰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라도 단독 글로 쓰기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번 글을 통해 그런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다.

 

카카오맵 동 명칭 설명 캡쳐

신주소인 도로명 주소로 부른 지는 한참이지만 뭔가 동 명칭이 주는 정겨움이 있어 동네 이름을 공부하다 보니 지도를 많이 활용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서울공예박물관과 감고당길이 같은 동일 줄 알았는데 다르다고 나왔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안국동, 감고당길은 송현동에 해당했다. 벽 하나를 두고 다른 곳으로 불린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감고당길'이라는 명칭은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의 친정 감고당이 자리하였다고 하여 감고당길로 불린다고 한다.

 

또 '감고당길'이라는 명칭은 이미 유명한 것 같은데, 이곳이 '여성독립운동가길'이라고도 불린다는 점은 생경하다. 차미리사 선생이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 교육을 하신 곳이고, 근화학원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전개한 독립운동 현장이었기에 명예도로명으로 '여성독립운동가길' 또한 부여되었다고 한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길일 수 있었는데 이렇게 그곳에 담긴 이야기나 역사를 찾아보면 그곳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내가 감고당길을 걸어본 이유는 '커피프린스 1호점'을 촬영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옛날 '커피프린스 1호점' 말고도 도깨비, 여신강림, 그해 우리는 등 최근까지도 이곳에서 많은 촬영이 이루어졌다. 감고당길을 알고 나면 드라마를 볼 때 한번쯤은 '어?? 감고당길인데!!' 하게 된다.


감고당길은 덕성여중과 덕성여고 사이에 있다. 정감 있는 돌담길을 걷고 싶을 땐 덕수궁 돌담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감고당길을 산책 루트로 추천한다. 나는 이때 혼자 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건 모두 길바닥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돌담길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리고 자연스레 재생되는 드라마의 기억들도. 나와 감고당길이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절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생각.


 


통의동 마을마당

오늘 적어볼 마지막 서촌 산책 루트, 통의동 마을마당이다. 건대입구역에 있는 서점 인덱스에서 공원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그때 통의동 마을마당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통의동 마을마당은 정말 작은 공원이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뛰어놀 것 같은 공원이 아니라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느낌의 장소이다.


물론 이 사진은 겨울에 찍어 차갑고 외로워 보이지만 가을의 사진을 보면 내 말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화질이 많이 깨지지만 이 사진을 어떻게든 구해오고자 노력했다. 이 따뜻한 노란 색감은 '도란도란'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한다. 이곳은 두 번이나 공권력과 충돌했고, 두 번 모두 시민들이 승리한 곳이라고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든 공원이 사라지는 게 싫다. 1850년 뉴욕 센트럴 파크 설계 감독을 맡은 옴스테드는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100년 후에 이 만한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하였다는데 공감한다. 도시 곳곳의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은 시민들에게 주는 여유와 안정감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얼마 전 걷다가 발견한 종로의 슬로건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의 힙플레이스'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20년을 넘게 서울에 살았지만 종로구에 갈 때는 새롭게 떠나는 마음으로 간다.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곳이, 모르는 매력이 튀어나온다. 무언가를 자꾸 꺼내어주는 도라에몽 주머니 같기도, 계속해서 구조를 바꾸는 미로 같기도 하다. 서울시민조차도 관광객으로 만드는 종로의 매력에서 나는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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