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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Feb 23. 2022

'회현동',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마주한다는 것

서울 힐튼호텔, 삼순이 계단, 회현 제2시민아파트, 남산 옛길

두 달의 시간 동안 '남산서울타워 야경 보러 가기, 국립중앙박물관 야간 개장 가기, 잠수교 걷기, 이촌한강공원 가기' 이 네 가지는 꼭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세 가지는 다 하고 남산서울타워 야경 보기만 이루지 못한 상황이었다. 꼬박꼬박 용산에 나올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네 가지도 다 못하고 끝낸다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하철로 향하지 않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삼각지역 방면 KT용산지사 버스정류장에서 보는 남산서울타워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신용산 라이프의 마지막 산책을 하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 도로 가운데에 자리한 버스 정류장 덕에 남산서울타워를 중앙에 두고 감상할 수 있었다.



서울 힐튼호텔

회현역 근처에 내려 남산공원 쪽으로 걸어왔다. 남산타워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밀레니엄 호텔 서울, 서울 힐튼호텔이었다. 이미 힐튼호텔이 매각되었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다. 서울 힐튼호텔이 철거되기 전에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서울 힐튼호텔이 철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사진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아쉬워하는 마음들을 대신해 나라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사진이었다.


서울 힐튼호텔은 양쪽 끝이 약간 휘어있다. 매각 소식을 접한 후 건물을 직접 보니 아쉬운 마음이 더욱 커져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힐튼 호텔에 관련한 칼럼, 아티클들을 찾아 읽었다. 날개를 펼치고 있다, 남산을 감싸 안는다는 표현을 읽었는데 힐튼 호텔의 모양새를 정말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

서울 힐튼호텔을 설계한 김종성 건축가가 디자인프레스와 인터뷰 한 글을 읽었는데 아쉬운 마음과 슬픈 마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듯했다. 문화가 자본을 이긴 적이 없다고. 이 한 마디에 많은 게 담겨있는 듯했다. 인터뷰를 읽으며 전통건축, 근대건축과 달리 보호받지 못하는 현대건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건물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그러면 오래된 건물을 다 철거하지 못하는 것이냐는 반응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게 아닌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는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마저 인터뷰에서 상당히 비관적이라고 몇 차례나 언급한 것도 슬펐다. 지금의 나는 100년 전 역사가 담긴 곳을 다니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오늘로부터 100년 후의 사람들은 어떤 역사를 마주할 수 있을까?



해는 점점 지고 있었고 나는 힐튼 호텔을 본 뒤 백범 광장으로 향했다.


사실 이때쯤부터 오늘 산책의 목적이었던 남산서울타워의 야경은 뒷전이 되었다. 야경 보기 전에 만난 노을 속 남산서울타워가 마음에 들었고, 힐튼호텔에 대한 아쉬움이 남산서울타워의 밤 풍경에 대한 기대감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백범광장까지 올라와서 남산서울타워 쪽으로 더 걸었다. 백범광장은 이번 산책의 메인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곳곳을 둘러보지는 않고 스치듯이 구경했다.


여기는 백범광장의 호현당이다. 나는 이런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전통미와 상반된 도시적임이 잘 드러나는 사진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쪽으로 올라왔다. 백범광장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중구인데 바로 옆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 동상은 위치상 용산구에 해당한다. 나는 남산공원이 중구에 있다고 알고 있어서 남산서울타워도 중구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용산구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굉장히 놀랐다. 용산구 로고에 남산서울타워가 왜 있어? 남산서울타워가 용산구에 있다고? 의 충격이 아직도 생각난다. 가벼운 산책을 목적으로 와서 남산 공원에 오를 생각은 없었기에 발을 돌려 공원 아래로 내려갔다.



삼순이계단

어디를 다닐 때 왔던 길과 가는 길이 똑같으면 아쉽다. 왔던 길과 가는 길을 달리 가면 볼 수 있는 게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남산서울타워를 보고 그대로 뒤돌아서 가지 않고 옆으로 향했다. 바로 옆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와 유명해진 '삼순이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드라마 < 이름은 김삼순>  봐서 어떤 장면에 나오는 건지는 모르지만  드라마 방영 이후 여기가 굉장히 유명해졌다고 해서 찍어보았다. 브런치를 쓰면서 삼순이계단에 대해서 검색해보는데  옆에 바로 브람스의 계단이 있다고 해서 조금 아쉽다. 미리 검색해봤으면 거기도 가볼  있었는데!!


어둠이 찾아오자 더욱 강렬한 색을 비추는 남산서울타워. 삼순이계단에서 길을 건너 회현역 쪽으로 가는데 회현 제2시민아파트를 발견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

제2시범아파트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2시민아파트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나름의 역사를 가진 곳이라고도, 드라마 <스위트홈>을 찍은 곳이라고도 알려져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지 생각했다. 사실 이곳을 여러 번 지나친 적 있는데 맘먹고 가본 적이 없었다. 가벼운 산책 끝에 역으로 향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힘도, 시간도 남아 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대충 한 컷 찍은 사진인데 시범아파트의 독특함이 단번에 느껴진다.


1968년 10월에 완공된 아파트. 회현 시범. 폰트에서부터 그 오랜 세월이 느껴졌다. 지금은 따라 하려고 해도 따라 할 수 없는 감성.

 

6층 입구 사진

밤이라 어두워서 생각보다 멋있게 찍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이곳에서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시범아파트의 출입구가 1층과 6층에 있다고 하는데 이 아파트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난 사진 같다.


옆에서 보는 6층 구름다리 출입구. 한국에서 일반 건축물에 구름다리가 적용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아까 구름다리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먼저 사진에서 본 디귿(ㄷ) 자 모양의 건물이 나왔다. 여기서 사진을 찍는데 고양이가 마구 울었는데 너무 무서웠다. (원래 고양이 무서워해서..)


예전에는 밑에도 내려갈 수 있다고 봤는데 지금은 낙석 위험으로 통행금지 푯말이 있었다.


영화로만 보던 홍콩이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몇 년 전 이곳을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해서 예술인에게 창작 공간과 주거지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진행되고 있는 건지 계획이 취소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푯말들이 이 아파트를 더욱 잘 표현해주었다. 관광객인 나로서는 서울의 최고령 아파트 중 하나인, 서울의 마지막 시민아파트를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남산 옛길

제2시범아파트로부터 회현역까지 내려오는 길바닥에 '남산 옛길'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옛날 감성을 담은 곳들이 여러 곳 남아있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최근에 다시 본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남산에 살고, 평창동에서 조깅하며, 홍대에서 일하는 최한결이 어디선가 튀어나와주길 바라며 걸었다.


서울 힐튼호텔, 삼순이계단, 제2시범아파트. 오래된 것들의 엇갈리는 운명을 마주하는 산책을 했다. 건축물도 먼저 지어졌다고 먼저 사라지지 않는다. 더 의미가 크다고 더 오래 남아있는 것 같지도 같다. 그런 면에서 건축물이 어쩌면 인간과 비슷한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촌', 어느 길을 걸어도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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