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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Apr 08. 2022

봄꽃들의 파티가 열리는 창경궁과 창덕궁

훌쩍 다가와버린 봄을 느끼러 떠난 서울 봄꽃 나들이

5대 궁궐에는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이 있다. 궁을 지나친 적은 많은데 가본 것은 굉장히 오래 전의 기억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다시 한번 5대 궁을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덕수궁과 경희궁은 다녀온 참이었다.


며칠 전 동생과 아빠와 함께 최근에 양평에 가서 향나무를 보았다. 제주도에서도 보았던 향나무를 다시 봤는데 복슬복슬한 매력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검색해보니 창덕궁에 750년 수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혼자 산책하기 위해 창덕궁 향나무와 그 일대를 포함한 루트를 짰다.



창경궁

대학로 근처에서 그간 마셔보고 싶었던 음료를 테이크아웃해서 창덕궁으로 걸었다. 얇은 니트에 재킷을 하나만 걸쳤는데 날이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날씨가 휙휙 바뀌는 요즘 딱 맞는 옷차림으로 나왔다는 점부터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맨날 제대로 맞추지 못해 춥거나 덥게 입었었는데 말이다. 알맞은 옷차림에 손에 든 음료까지 산책의 시작부터 너무나 봄이었다. 그렇게 걸으며 창덕궁에 도착했다.


사람이 걸리지 않게 찍기 어려웠던 창경궁 매화

창경궁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은 것이 있었다. '오늘, 주말이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연인끼리 데이트를 하러, 가족끼리 나들이를 하러, 출사 하러 저마다의 이유로 매화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창경궁이 북적였다.


창경궁에 들어서자마자 만개한 진한 색의, 연한 색의 매화를 보면서 매화에서 소리가 난다면 보글보글이란 소리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앵두나무꽃, 벚꽃, 자두꽃 등 비슷하게 생긴 꽃들 가운데에서 가장 풍성하고 자신감 있게 피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옥천교에 올라가서 찍은 모습인데 이 다리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혼자 산책을 왔기 때문에 꽃 사진만 예쁘게 찍고 자리를 이동했다. 눈으로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아름다움이었다.


옥천교를 건너 명정문을 지나 명정전으로 가는 길목에 뒤를 돌아 찍은 홍화문이다.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홍화문과 북적이는 사람들, 그리고 양 옆으로 핀 예쁜 꽃들이 봄의 생기를 실감하게 했다.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왜인지 자꾸 눈을 뗄 수가 없는 사진이다.


그리고 보이는 명정전이다. 사실 창경궁이 처음이 아니기도 하고 이날 산책은 향나무와 꽃을 보러 왔기 때문에 건물들을 세심하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이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스토리가 있는 곳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마음으로 가벼이 즐기고 싶었다.


이날 궁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궁만큼 남녀노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그들을 어우러질 수 있게 하는 공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궁은 어린아이들부터 초등학생들, 20대 청년들과, 부모님들,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모두가 웃을 수 있고, 모두를 너그럽게 포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나이를 내세워 누군가를 입장하지 못하게 하는 공간이 많아지는 지금 궁이 가진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나는 명정전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향했다. 창경궁을 얼른 구경한 다음 창덕궁으로 넘어가서 향나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경궁과 창덕궁 두 곳 모두 너무나 넓기 때문에 이날 하루로 세세하게 다 살펴볼 수는 없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봄이 다시 오고 있기 때문에 걸을 때 바닥을 보면 이끼들도 다시금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바닥을 보는 것이 더욱 재밌어지는 계절인데 요즘엔 민들레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영춘헌과 집복헌을 뒤로 두고 소나무가 서있었다. 정조가 영춘헌에서 독서를 즐기며 독서실 겸 집무실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죽음을 맞이한 곳도 이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꾸 빨라지는 발걸음에 너무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지나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환경전 뒤편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었다. 앉아서 가만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선선한 날씨와 따사로운 햇살이 좋았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상태였다.


그렇게 가만히 이곳저곳을 바라보는데 어쩌다가 고개가 들려 하늘을 쳐다봤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나무를 발견했다. 이름 모를 나무이지만 나는 한순간에 마음을 뺏겼다. 창경궁에 들어오자마자 본 매화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 나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모두가 봄의 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라도 봄의 나무를 봐줘야겠다고. 이때 내가 이 나무를 바라봤던 순간처럼 가끔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 때에도 누군가 한 명쯤은 날 알아봐 주는 나름 운명적인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거면 됐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환경전 돌계단에 그대로 앉아 나무를 한참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산서울타워다. 환경전을 등지고 직진하면 계단이 나오는데 그 계단에 서서 찍은 사진이다. 나무와 지붕, 잡상들과 함께 어우러진 남산서울타워가 너무 아름다웠다. 실루엣만으로도 나에게 기쁨을 주는 친구다. 보이면 무조건 찍게 되는 것!


그리고 계단에 올라와서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더욱 탁 트인 느낌이 들어 마음까지 시원했다.


개인적으로 나무에 가려진 남산서울타워 사진도 정말 좋아하는 사진이다.


이렇게 나무와 꽃을 보며 걸음을 옮긴다. 계단을 올라오면 바로 창덕궁으로 넘어갈 수 있다. 창경궁 산책은 가볍게 마쳤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다.




창덕궁

창경궁이랑 이어지는 창덕궁 입구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 창덕궁 홍매화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인파 때문인지 홍매화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펜스도 쳐져 있었다. 오히려 이 펜스 덕분에 공평하게 홍매화의 아름다움을 저마다의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창덕궁 홍매화를 올해 처음 보았다. 근데 왜 이 꽃을 보러 모두들 오는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쯤 보면 됐다 하고 다른 걸 구경하러 이동했다.


창덕궁 인정전도 한 번 들렀다. 어쩐지 모습이 권위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드는데 창덕궁의 으뜸전각으로 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하고 공식적인 의식을 치르던 곳이라고 한다. 역시!


북촌 쪽으로 빠지는 문 바로 앞에 이런 특이한 나무도 있었다. 이제 이 근처에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창덕궁 향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검색을 통해 봉모당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봉모당의 입구를 찾아 근방을 돌아보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담 너머로 발견한 구불구불한 나뭇가지들이 마치 메두사를 연상시킨다. 봄이 오면서 피어오르는 꽃잎들이 눈길을 끄는 것과 달리 꽃잎과 푸른 이파리 하나 없이도 눈길을 사로잡는 나무들의 위엄과 경이로움을 체감하고 있다.


나는 나무를 정말 좋아하는데 정말 다양한 매력의 나무가 곳곳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어 걸음이 재밌었다. 미로 같은 궁 내부이지만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겹겹이 쌓인 담과 기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창덕궁을 추천하고 싶다. 가장 최근에 운현궁을 다녀왔는데 확실히 규모가 비교되지 않게 훨씬 큰 듯했다.


걷고 걸었는데 봉모당 앞에 있다던 창덕궁 향나무를 발견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고민에 빠졌는데 향나무가 보이는 문 틈 사이로 해설하시는 분과 함께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설마 향나무를 보려면 따로 티켓을 사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 이대로면 향나무를 못 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밖으로 나와서 출입금지 팻말이 놓인 곳 앞에서 잠시 기다렸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역시나 티켓을 사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나오시는 해설사님께 이 안으로 들어가려면 티켓을 사야 하는 거냐고 여쭤보았다. 따로 티켓을 사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데 오늘 티켓은 매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포기할 수 없어 향나무도 볼 수 없는 거냐고 여쭤보았는데 바로 앞쪽에 자리한 향나무만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오예! 역시 물어봐서 손해 보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창덕궁 향나무다! 약 750년 수령이라고 하는데 이 나무는 높이가 높지는 않았다. 거의 나무가 누워 있었다.


나무 기둥이 엄청 두꺼운 걸로 봐서 높이 대신 나무 기둥 두께로 세월을 체감할 수 있었다. 높이가 5.6m인데 뿌리 부분 둘레가 5.9m라고 하니 수치상으로도 얼마나 두꺼운 두께인지 대략 느낌이 올 것 같다.


지렛대 없이는 거의 자라기 어려운 상태였다. 지렛대의 두께조차도 작은 나무 기둥과 견줄 수 있을 만한 두께였다. 향나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왜 이름이 향나무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는데 안내판을 통해 향나무의 목재가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향나무인가 보다 싶다. 어째 이번 봄소풍에서 꽃보다는 나무에 더 많이 반하고 온 것 같다. 마지막에 원하던 향나무까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날 창경궁과 창덕궁에서 봄을 만끽하면서 계절의 변화는 날 부지런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누워있길 좋아하고 밖으로 나오려면 준비가 오래 걸리는 나에게 지금 밖에 볼 수 없는 기간 한정 계절의 변화는 기필코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준다. 자연은 이렇게 항상 꽃을 주고, 푸릇한 잎을 준다. 더욱 가득찬 삶을 살게 해준다. 아무것도 보답할 수 없는 나는 항상 과분한 마음이 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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