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릉에서 봄이 오고 있음을 직접 느끼다.
할 일이 없을 때면 지도를 켠다. 지도를 켜서 이곳저곳을 확대해보고 갈 만한 곳이 있나 찾아본다. 몇 달 전에도 여느 때처럼 지도를 보며 놀고 있었고 '의릉'을 발견했다. 태릉, 선정릉, 온릉은 들어봤는데 의릉은 처음이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의릉은 낯설 것 같다. 지도상으로 보니 주변이 조용한 동네 같았고, 바로 옆 천장산에 비해 작아서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을 거라고 생각해 핀을 찍어두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약속을 잡는데 내가 루트를 짰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월곡역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서점이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의릉도 함께 가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내가 줄 수 있는 팁이 하나 있다면 이름에 '국립', '서울', '릉' 같이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에 갈 때면 혹시 모르니 신분증을 챙기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조선왕릉 등 만 24세까지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신분증을 기계에다 찍는 방식으로 인증하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챙기지 못했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1,000원이라 크게 비싸지는 않지만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는 게 좋으니까!
'의릉'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왔기 때문에 도착해서 설명부터 읽었다. 의릉은 조선 20대 왕 경종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의 능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로 더 유명할 것 같다. 경종 다음으로 왕이 된 영조의 이복형이고, 병약해서 재위한 지 4년 만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전·관아(官衙)·능(陵)·묘(廟)·원(園)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이라는 뜻을 가진 홍살문을 지나니 바닥에 돌이 깔려 있었다. 왜 왕이 걷는 길로 걸으라고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길로 걸어가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로'를 밟고 정자각으로 다가섰다.
정자각에 도착해서 바라본 홍살문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미묘하게 중앙이 맞지 않았다. 왜 이렇게 지어진지도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검색해봐도 관련된 정보가 나오지 않아 아쉽다.
그리고 의릉 곳곳에 있는 나무들을 보면 여름에 오면 정말 예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의릉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
정자각의 뒤쪽으로 가서 능을 바라봤다. 의릉뿐만 아니라 다른 릉 앞에도 정자각이 항상 있던데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릉 앞에 정자각'으로 검색하니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선왕릉 디지털 백과에서 설명하는 정자각의 이모저모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왕릉의 정자각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건물로, 왕릉에서 봉분이 있는 언덕 아래에 위치한다고 한다. 디지털 백과에 따르면 조선왕릉 42기 가운데 정자각이 조성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는데 의릉이 건립 당시의 형태를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정자각으로 걸어올 수 있었던 어로뿐만 아니라 계단에도 무언가 설명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정자각 계단에 대한 설명도 읽어봤는데 계단은 동쪽에 2개, 서쪽에 1개로 동쪽 계단 중 소맷돌이 있는 화려한 계단은 선대 왕의 영혼이 이곳을 지나 정자각 뒤편 문을 통해 봉분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한 ‘신계(神階)’이다. 또 다른 하나는 ‘어계(御階)’로, 왕이나 제관이 제례를 올리기 위해 이용하던 계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쪽 계단은 왕 또는 제관이 제례를 끝마친 뒤 이용한다는데 가능하면 조상님들이 지켜온 이런 룰을 우리도 따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자각 쪽에서는 경사로 인해 능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옆쪽으로 가서 능을 보았다. 능이 앞뒤로 나란히 있었다. 의릉에 다녀와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사이트를 들어가 봤는데 릉의 형태를 단릉, 쌍릉, 동원이강릉 등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의릉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동원상하릉의 형식이었다. 곡장을 두른 위의 봉분이 경종의 능, 곡장(굽은 담장)을 두르지 않은 아래의 봉분이 선의왕후의 능이다. 이렇게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봉릉한 방식이라고 한다.
능 앞에는 소나무들이 서있었다. 소나무 자체보다는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너무 인상 깊었다.
친구와 나는 정자각과 능을 구경한 다음 옆으로 산책하러 갔다. 요 근래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는데 나만 날씨도 모르고 겨울 패딩을 입고 있어서 조금 뻘쭘했다.
그렇게 걷는 도중 눈길을 사로잡은 아이가 있었다. 두구두구! 노란 꽃봉오리였다. 지금까지 봄이 온다, 온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긴 했었는데 실제로 꽃봉오리를 보니 진짜로 봄이 오는구나 싶었다! 네이버 스마트 렌즈로 검색해보니 '산수유 꽃봉오리'였다. 산수유가 빨간 열매를 맺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빨간색과는 정반대인 노란 꽃봉오리를 피운다는 점이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해가 든 바닥의 이끼를 보는데 여기서도 봄이 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찬바람에 푸석푸석하게 메말라버리는 이끼가 점차 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이끼의 생명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향기와 냄새의 어감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 산책에서 봄 하면 떠오르는 꽃의 '향기'는 맡을 수 없었지만 봄이 다가오는 '냄새'를 맡았던 산책이었다. 봄을 시각적으로, 촉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 기뻤다.
봄이 오면 곧 여름이 온다는 것이기에 절로 행복해졌다. 행복감을 가득 느끼며 걷는데 덤불 같은 나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서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엄청나게 특이한, 특이해서 내 취향인 나무가 있었다. 바로 향나무였다.
생김새가 정말 독특해서 눈길이 절로 갔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160년이라고 한다. 그간 오래 살아온 나무들을 여럿 보았는데 지금까지 본 나무 중에 가장 특이한 모양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각기 뻗어 있으며 잎은 뒤로 쏟아져 덤불처럼 되어 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나무 기둥도 엄청 굵어 보이지 않는데 버티고 있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름 늦지 않은 시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황금빛 해가 정말 잘 들어서 늦은 오후 시간대의 느낌을 주었다. 향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시민들의 모습까지 이날 이 시간의 의릉은 평화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거의 다 산책을 마칠 즈음 멋진 건물을 발견했다. 요즘 건축물 사진에도 관심이 많은 터라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친구가 안내판을 읽으며 이곳에서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 여기서 발표됐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란 1972년 7월 4일 남북한 당국이 국토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 발표한 역사적인 공동성명이라고 한다. 성명서에는 <첫째, 외세(外勢)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통일의 3대 원칙'이 담겼다고 한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여러 번 배웠었는데 어쩌다 직접 그 장소에 와봤다고 하니 정말 놀라웠다.
건물 구조도 굉장히 특이했는데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나상진 님이 설계하셨다고 한다. 나상진 님이 설계하신 곳 중에 가보려고 지도에 저장해둔 곳이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만나보게 된 발표 강당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왜 우리에게 의릉이 낯설까 싶었는데 1995년 중앙정보부가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곡동으로 이전한 후 뒤늦게 2005년에 시민들에게 개방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무언가 비밀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친구와 가볍게 산책하려고 온 곳인데 많은 걸 배워간 곳이었다. 역사적 배움보다 더 좋았던 것은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 봄이 서서히 다가오는지도 모르다가 마주하게 되는데 올해는 봄의 작은 변화들을 직접 눈으로 담을 수 있어 뿌듯했다. 얼른 날이 더 따뜻해지고, 초록색 세상이 되어 더 많이 산책을 다니고 싶다. 하루빨리 봄의 냄새를 넘어 봄의 향기까지 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