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진 Nov 03. 2022

에트르타의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

오랜만의 기록이다.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있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을 오면 여행을 많이 다닐 줄 알았고 실제로 최대한 많이 여행을 다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왔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내 교환학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나의 여행 취향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여행 취향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곳에 다녀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곳인 '에트르타'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에트르타에 도착하자마자 본 바다 풍경이다. 흐린 날이었지만 탄성이 절로 나왔다. 덩케르크 바다도 보고 왔었고, 전날 생말로에서 멋진 선셋을 봐서 바다를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또 새로웠다. 


나는 바다를 볼 때 항상 시각적인 자극이 더 컸는데 에트르타의 바다는 청각적 자극이 정말 크게 다가왔다. 이곳은 돌멩이로 이루어진 바다여서 파도가 돌에 부딪치는 소리가 굉장했다. 이 소리가 마라샹궈보다 큰 자극인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파도 소리를 기억하고 싶어서 자꾸 영상을 찍었다. 돌멩이도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에트르타 하면 유명한 코끼리 절벽이 나왔다. 먹을 걸 사서 절벽을 오르기로 했다. 바다 근처의 빵집에서 타르트와 커피를 사 먹고 절벽으로 향했다.


코끼리 절벽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해변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엄마 코끼리 절벽을 오르기로 했다. 중간중간 오르면서 사진도 찍고 친구들 사진도 찍어주었다. 점점 올라가면서 더 높은 곳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높은 곳에서 보는 느낌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엄마 코끼리 절벽에 올라서 본 에트르타 마을
엄마 코끼리 절벽에 올라서 본 아빠 코끼리 절벽

엄마 코끼리 절벽에 오르면 옆으로 숨겨진 아빠 코끼리 절벽이 나온다. 아빠 코끼리의 특징은 두꺼운 코!


높이 올라 겹겹이 쌓아 올린 치즈케이크 같은 절벽을 찍은 가장 왼쪽에 있는 사진이 참 마음에 들어서 돌아오는 길에 그림으로 그렸다. 절벽이라 그런지 모양이 제각각이고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걸으면서 이리저리 보면 좋을 것 같다.


절벽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데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과 느낌이 정말 많이 달랐다.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고요했다. 엄청난 소리를 내뿜는 파도가 아니었다. 어쩜 앞부분은 거칠고 사나운데 속은 이렇게 고요하고 잔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저 바다에 빠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참 고민도, 걱정도 없이 살고 있지만 저 바다에 빠지면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가로막는 것은 바다에 빠지면 안 된다는 행위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바다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소설 중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 나오는 재경 이모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에 나온 캐릭터의 선택을 몇 년이 지나서야 직접 이해하는 경험이라니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더더욱 소중했다.


이 바다를 보면서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는 인생곡 중 하나인 스다 마사키의 <sprinter>를 들었다. 이 시원함 속에서 내년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싶었다. 끝나면 시작하고, 끝나면 시작하는 우리의 삶이 흐릿한 경계로 무뎌진 하늘 그리고 바다의 모습과 닮은 듯했기 때문이다. <sprinter>를 들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다시 바다 앞으로 내려오니 날이 많이 맑아져 있었다. 물론 이런 날씨의 맑은 바다도 예쁘지만 나는 흐릿하고 우중충했던 에트르타 바다가 더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다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맑은 파도와 하늘을 덮어버린 구름의 사진을 계속 찍었다. 돌멩이 위에 앉아 파도도 다시 한번 감상하고 계속해서 바다를 눈에 담았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게 굉장히 아쉬운 순간이었다. 전날 갔던 몽생미셸보다 훨씬 좋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좋아했다던 에트르타 바다는 정말로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너무 좋다고 느꼈던 곳이다. 근처의 기념품샵에서 에트르타 그림엽서를 하나 사서 마지막으로 인증샷을 하나 남겼다.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엽서도 예뻤지만 나는 내가 봤던 에트르타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 이걸로 샀다.


에트르타는 한 번 다시 갈 수 있다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가서 하루 종일 앉아서 멍 때리다가 오고 싶다. 파리 패션위크도 다녀오고, 에트르타도 다녀오면서 프랑스에 교환학생 오기를 참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꼭 프랑스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이 나라를 고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리 패션위크를 보며 파리는 도시 전체가 참 화려하고 풍부하다고 생각했고, 에트르타와 덩케르크 등 프랑스의 여러 곳들을 여행하면서 '그래. 내가 이래서 프랑스를 골랐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점차 내 선택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확신의 한 가지 커다란 이유가 되어준 에트르타에 언젠가 다시 와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릴의 보벙가든에서 하는 피크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