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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Nov 05. 2021

매년 다른 느낌을 주는 '어린이대공원 생태연못'

사람의 개입이 없어 자연 그대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곳

드디어 브런치를 개설하고 처음으로 서울 안의 장소에 대해 글을 쓴다. 사실 나는 정말 좋아하는 장소는 알려주지 않는 편인데 브런치이니만큼 특별히! 이곳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바로 '어린이대공원 생태연못'이다. 내가 서울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제목을 길게 쓸 수 없어 많이 줄였지만 원래 '같은 장소이지만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 곳'이라고 쓰고 싶었다. 그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어! 하고 다시 가도 나는 똑같은 장면을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고 오는 곳이다. 오늘은 '어린이대공원 생태연못'과 '나' 사이의 3년에 걸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019년, 처음 '생태연못'에 반하다.

2019년 처음으로 '어린이대공원 생태연못'에 반했다. - 이다음부터는 그냥 생태연못이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 날 때부터 서울에 살며 가족들과, 학교에서 단체로, 어린이대공원에 정말 많이 놀러 갔었다. 솔직히 이곳을 그동안 몇 번은 지나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팀 프로젝트 영상 촬영지를 찾기 위해 어린이대공원에 온 2019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생태연못'에 대해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그냥 지나치는 배경이었던 곳이 나에게 의미를 갖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은 축축한 날이었다. 해가 없었다. 우거진 나무와 수풀, 그리고 연못에 고여있는 물까지 내가 알던 어린이대공원인가 싶었다. 이 시야를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어 카메라를 들었다. 이 구도에서, 저 구도에서, 세로로, 가로로, 정방형으로 수없이 찍었다. 기본 카메라로 그냥 아무렇게나 찍는데도 모든 컷이 마음에 들었다. 내 눈으로 보는 것에 비해 카메라에 안 담길 때의 아쉬움은 정말 크다. 하지만 이 날은 카메라에 '생태연못'의 멋이 담기는 것 같아 너무나 감사했다. 


적당한 나무와 풀, 그리고 연못의 물을 보고 다음에 또 꼭 놀러 오리라 다짐했다. 이 날 '생태연못'은 나에게 의미를 가지는 장소가 되었다. 처음으로 이곳을 마음으로 본 날이라 생각한다. 눈을 뜨고 백 번을 본다고 한들,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본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내가 닫힌 마음으로 지나친 것이 얼마나 많을까?



2020년, 같은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음을 깨닫다.

2020년 6월, 나는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올해도 꼭 한 번 생태공원을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예정에 없던 인턴 지원을 준비하던 때라 마음의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 가지 않으면 올해는 못 갈 것 같았다. 그리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동생과 함께 다녀왔다.

   

축축하고 짙었던 초록색의 풍경이 사진처럼 머리에 남아있었다. 이번에는 그 풍경을 조금 더 멋지게 찍겠다고 마음먹고 DSLR 카메라를 챙겼다. 그런데 내가 본 '생태연못'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첫째로 일단 6월이었다. 해가 매우 쨍쨍했다. 검은색을 한 방울 탄 초록색 대신 라임 껍질 같은 밝은 초록색이 날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수풀이 매우 매우 많이 자라 있었다. 왜? 그제야 나는 '생태연못'의 의미를 깨달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 그래서 매번 같을 수는 없다는 걸. 자연 그대로의 속도로, 생태연못만의 속도로 나날이 변화하는 곳이라는 걸.


2019년에 왔을 때 연못을 참 좋아했는데 잠시 걸어도 땀이 나던 한여름이라 그런지 물도 한 방울 찾아볼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쉽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둘러보아도 작년 그때의 느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날씨도 다르고, 나무의 모양도 다르고, 내가 원래 좋아했던 시야는 무럭무럭 자란 풀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생태연못의 나무 데크를 따라 걸어보았다. 생태연못을 가로질러 걸어가서는 반대편에서 보는 생태연못의 모습을 감상했다.


그날 나는 배웠다.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게 있구나, 그러니 보고 싶을 때 보아야 하는구나,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구나. 이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더 용기 내는 사람이 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과제가 있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즐기며,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었다.



2021년, 이번엔 어떤 모습일까 기대되다.

올해도 어김없이 '생태연못'에 다녀왔다. 벌써 삼 년째. 이 정도면 정말 연례행사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나와 '생태연못'만의 약속.


가로수길에서 약속이 있는 8월의 어느 날, 일부러 한 시간 정도 일찍 출발했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버스 한 번만 타면 바로 약속 장소로 갈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벌써 나의 연례행사가 3년이나 지속되었다는 뿌듯함과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되는 점이 이번 나들이를 더욱 기대되게 했다.

 

이번에도 강렬한 해가 장기 자랑하는 여름날이었기 때문에 쨍한 초록색이 날 맞아주었다. 이번에는 물도 볼 수 있었다. 맴맴 - 하고 울던 매미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또 다른 나무들은 자연이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느낌을 주기에 또 사진을 찍어 남겨두었다.

 

'어린이대공원 생태연못'은 나에게 밀림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이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우거진 나무들이 사진 안에 꽉 차는 느낌이 좋다. 근처 빌딩 같은 다른 요소들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는 위풍당당함이 보이는 것도 같다. 도심 속에서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점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생태공원'은 데이트 코스나 놀러 올 만한 곳은 아니다. 앉을 곳도 없고, 규모가 엄청나게 크지도 않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여기는 꼭 가봐야 돼! 하고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좋아진다. 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기운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매년 '생태연못'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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