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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Nov 02. 2023

4년 만에 다시 온 런던, 가족과 베프가 함께 할 확률

2018년 혼자 떠난 첫 해외여행지 런던을 4년 만에 다시 방문하다.

2018년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곳은 영국 런던이었다. 영어권 나라를 동경했고, 세진이가 런던에 있었던 게 이유였다. 히드로 공항에 내려서 혼자 씩씩하게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로 호스텔에 도착했는데 어떤 용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018년 12월의 어느 날 런던에서 맞는 첫 아침에 나는 8시부터 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곳과 전혀 풍경이 다른 곳을 달리는 이층 버스에 몸을 실으며 '날 키운 돈이면 엄마랑 아빠도 유럽을 몇 번은 와봤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서 꼭 다시 같이 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근데 4년도 채 되지 않아 런던에 가족들이랑 왔다.


2022년 11월, 파리 여행을 마치고 런던으로 향하는 유로스타에 오르다.




그림을 그리는 엄마가 좋아한 내셔널 갤러리

런던 가족여행 코스의 대부분은 이미 내가 가본 곳이라 그다지 새롭지 않았음에도 내셔널 갤러리는 정말 좋았다. 내셔널 갤러리는 런던의 필수 코스라 내가 고심해서 골랐다고 말할 순 없지만 특히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엄마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데 정물화나 풍경을 자주 그려서 인상주의 쪽을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마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진짜 좋아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던 해바라기 그림 앞에서 사진 찍어달라길래 사진도 찍어줬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기지 못하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어 여러 장 찍었다.


새로운 작품들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2018년에 제일 좋아했던 작품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에 이 말 그림엽서를 사서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동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달렸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고른 그림인데 이 그림을 동생이랑 같이 보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또 제일 좋아했던 별로 유명하지 않은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은 없어진 듯했다. 아쉬웠다.




빨간 2층 버스의 앞자리에 탄 아빠

내셔널 갤러리에 갔다가 밥을 먹고 2층 버스의 맨 앞자리에 탔다. 버스 한쪽에 카메라를 세우고 영상을 찍었는데 엄마가 해바라기 작품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하는 게 재밌었다.


버스에서 내려 송파구 잠실 같은 길을 걷다 보니 나온 곳은 바로 테이트 모던! 확실히 엄마는 현대 미술엔 관심이 덜해 보였다. 근데 동생도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서일까 테이트 모던을 엄청 좋아했다. 2018년에 테이트 모던에 왔을 때는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이날 내 기억엔 전망대에 올라갈 수 없었다.


테이트 모던에 간 후에는 버로우 마켓에 갔고, 몬모스에서 플랫화이트를 마셨다. 왜냐하면 세진이가 내 첫 런던 여행 때 딱 이 코스를 데려가줬기 때문이다. 계획을 딱히 못 세우고 와서 내가 아는 런던을 보여줬다.


4년 만에 방문한 몬모스는 테이크아웃할 때 일회용을 제공하지 않도록 바뀌어 있었다. 커피 주문을 명 받은 동생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 컵을 사버렸고 그게 커피 값보다 더 나왔다. 4년 만에 다시 마신 몬모스의 플랫화이트는 정말 맛있었다. 한 번 더 마시고 싶다고 느꼈던 찰나 무작정 들어간 카페 원두가 몬모스 원두여서 기분이 좋았었던 기억도 적어둔다.


런던은 버스에 해리 스타일스 있다.

아빠는 여행에서 뭘 제일 좋아했을까. 파리 센강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싶다고 했고, 런던에서는 빨간색 2층 버스를 타고 싶다고 했다. 다른 색도 아닌 꼭 빨간색을 타고 싶다고 말했을 때는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면 센강에서의 유람선이나 런던의 빨간 2층 버스나 한국에선 해볼 수 없는 것들이니까.




취향이 비슷한 듯 다른 동생과 런던 자연사 박물관

런던 3일차 브런치

이미 10월에 여행을 세 번이나 다녀와서 엄청 지친 상태로 가족 여행에 참여했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천천히 걷게 되어 셋의 뒷모습을 자주 봤다. 그래서 걸어가는 뒷모습이나 박물관을 보고 나오는 사진도 꽤나 있다. 가족 여행에서는 아무거나 고민 없이 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ㅋㅋㅋ 커피도 시키고, 파리에서는 깔라마리도 시키고 먹고 싶은 건 다 먹었다. 


브런치를 먹고 향한 곳은 바로 런던 자연사 박물관이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촬영지인 이곳은 나도 처음 와 보는 곳이라 기대가 됐다. 유럽여행 카페인 '유랑'에서는 유아동 자녀들을 위해 추천하던 곳이었는데 20살을 훌쩍 넘긴 나랑 동생이 이곳을 엄청 좋아했다. 특히 햇살이 너무 좋을 때 가서 더 좋았다.


근데 또 동생과 나의 취향이 미묘하게 달랐다. 동생은 왼쪽 사진에 있는 핑크색 돌을 보는 걸 좋아했고, 나는 핑크색 돌 같은 건 관심 없고 달 조각, 화성 조각을 보러 갔다. 진짜 우주의 흔적이 나에게 왠지 엄청난 것처럼 느껴졌었다. 이렇듯 은근히 잘 맞는 듯 안 맞는 취향이 어떨 땐 웃기기도 하지만 동생 만한 친구가 또 없다.




여전히 내가 제일 사랑하는 친구, 수연이와 카페

가족 여행과 수연이의 유럽 여행 날짜가 행운스럽게도 런던에서 겹쳤다! 그래서 한 번 만나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숙소가 둘이 너무 가까워서 저녁에 잠깐 테스코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친구랑 단둘이 간 해외여행이 수연이와의 도쿄 여행이었는데, 둘이 외국에서 놀아봤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보니까 또 신기했다. 이날은 잠깐 만나서 베를린에서 사 온 선물을 주고 사진 찍고 헤어졌다.


그리고 마트에서 만난 다음 날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가 엄마, 아빠, 동생은 노팅힐에 가고 나는 수연이를 만나러 다운트 북스에 갔다. 아주 예쁘게 머리띠 하고 내가 선물로 준 베를린 에코백 들고 나온 이날 스타일링 참 좋아한다.


다운트 북스를 가볍게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작년에 야구에 빠지게 된 후로 수연이랑 관심사가 너무 달라지고, 내가 교환학생에 와서 못 만나면서 멀어진 것 같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만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편하고,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구나 느낄 수 있었다.


2022년의 런던에서는 몇 년 전 과거의 생각을 많이 했다. 혼자 런던으로 놀러 와서 세진이를 만나 테이트모던 야간 개장에 왔던 것. 꼬꼬마 중학생 때 만나 롯데마트에서 자주 놀았던 수연이와의 추억, 혼자 런던 여행 왔을 때 엄마아빠랑 다시 와야지 다짐했던 생각까지! 이번 여행의 코스 자체는 막 새로울 건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처럼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시간 잡기도 어렵고, 길게 여행 다니기도 어려운데. 가족이 다 함께 여행을 오고, 똑같은 시기에 제일 친한 친구가 런던에 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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