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장례식

타지키스탄에서

by 조르지

차창 밖 풍경이 아찔하다. 오른쪽으로 몸무게를 한치만 기울여도 달리는 차가 가파른 절벽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속이 울렁인다. 생후 10개월 된 현지 직원의 아이가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라쉬트 지역을 향해 6시간째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다. 출장 차 한 달에 한 번은 족히 오갔던 이 산 길이 이렇게 굽이 굽이 고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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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길, 한 직원의 아이가 폐렴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두샨베의 한 병원에 다녀왔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애타는 마음으로 두샨베로 달려왔을 그 험한 산길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의사는 아이가 너무 어려 수술조차 위험하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고 했단다. 보호자가 앉을 공간조차 없는 병원은 의사의 진단만큼이나 참으로 형편없다. 오늘 아침에 정확한 결과가 나왔다면, 그는 아이를 안고 지금쯤 다시 구비구비 라쉬트로 향하는 산길 위에 있을 것이다. 시골 출신인 그 직원은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반면 나는 현지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 직원, 사무장이라는 이유로 직원들로부터 ‘미스 은지’라 불린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영어만을 사용하는 나에게 '너는 왜 현지어를 배우지 않냐'라고 묻는 직원은 그동안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본인의 부족한 영어실력을 부끄러워했고 미안해했다. 여느 때처럼 나는 아이의 증세와 그의 안부를 통역해주는 직원을 통해 물었다. 타직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전 사업장 우리 직원들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헤드오피스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업장 매니저들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에게 안부인사를 제대로 건넨 적도 많지 않았다. 나는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외국인이며, 디렉터급의 포지션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 이 나라, 이 사람들에게 계속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처럼 부족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따라주고, 함께 해주는 이 사람들에게 오늘따라 한없이 미안하다. 며칠 전 병원을 떠날 때, '힘내라. 기도하겠다'라는 말 한마디, 직접 그 직원의 눈을 맞추며 해주고 왔더라면, 지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웠을까? 갓난아이는 결국 엄마를 떠나 하늘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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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라쉬트의 장례에 다녀온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또 다른 비보를 접했다. 암으로 병세가 악화되었던 한 직원의 어머니가 고통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타직은 사람이 죽으면 당일에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자의 시신을 집 밖으로 옮기고, 무슬림식 기도를 하고, 매장하는 장소로 떠나는 장례 절차를 따른다. 의외로 굉장히 단출하다. 상주는 집 밖에서 조문객들과 포옹하며, 소리 내어 울어야 한다고 한다. 눈물이 나지 않아도. 어릴 적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골에서 친척들이 계속 곡소리를 내던 그 장면과 닮았다. 형제도 없고, 먼저 하늘로 떠나간 언니의 자식들까지 맡아서 키워야 하는 우리 직원은 못 본 새 상당히 야위어 있었다. 나를 안고 다시 소리 내어 우는 그녀를 있는 힘껏 안았다. 할머니의 시신을 떠나보내며 주저앉아 통곡하는 손녀딸의 모습에선 이 가족을 위로하는 마음보다 나의 아픔에 집중했다. 함께 간 직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던 각자의 기억들을 꺼내어 함께 울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죽음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그저 그냥 늘 곁에 있는 것이라고 했던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