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의 그날들
두서없이 줄기줄기 금이 가 있는 모텔 방의 하얀 벽이 눈에 들어온다. 지진이 할퀴고 간 고르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늘은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날이고, 네팔 직원들과 북적대며 함께 묵는 아르켓의 숙소가 아닌, 고요하게 혼자 잠든 지난밤이었음에도 어김없이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 태국을 떠나는 날부터 네팔에 머물었던 지난 3주간 하루에도 수없는 다짐을 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자. 네팔의 파견 직원들과 현지 직원들이 긴급구호 활동에 임할 때 놓칠 수 있는 틈새들을 잘 메꾸기 위해 노력하자. 일정의 절반 이상을 체류했던 카트만두 헤드오피스에서도, 베이스캠프에서도 나의 존재가 오히려 이들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긴장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냈다.
어제는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가장 깊은 지역 중 하나인 만부 지역 내 피해 학교를 다녀왔다. 모든 건물들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고, 아이들의 손글씨가 남아있는 노트들이 그 날을 실현하듯 여전히 길목에 쏟아져 있었다. 그 한편엔 무너진 학교를 스스로 힘으로 복구하고자 자재를 맨손으로 옮겨 나르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광경을 마주했다. 폭우와 계속되는 여진의 두려움 가운데 가장 도움이 필요로 하는 깊고 깊은 산속 마을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네팔 직원들을 만났다. 그들과 헤어지는 순간 나눈 악수 속 두 손이 마음을 자꾸 두드린다.
강도 7.4의 두 번째 강진이 있던 날 HO 4층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두 발을 지탱하고 있던 계단이 요동쳤고 어떤 정신으로 건물 바깥으로 뛰어내려왔는지 모르겠다. 건물 마당에 다다랐을 때, 여자 직원들은 모두 울고 있었고 함께 일하는 단원은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한번 겪어봤기 때문에 괜찮다며 처음인 나를 위로한다. 난생처음 겪어본 지진의 공포보다 위급한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지금 해야 하는지가 매우 혼란스러웠고 억압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이후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내 심장이 아직껏 쿵쾅대고 있었고 두 다리가 후들거림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이나마 첫 강진부터 이 땅에서 일하고 있는 파견 직원들과 네팔 직원들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겪고도 자신의 트라우마와 심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지금껏 일에 매진해왔을 그들을 감히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네팔에 머물고 있는 이들과 네팔을 다녀간 이들, 그리고 네팔 밖에서 기도로 마음을 다해준 모든 이들이 지친 심신과 두려움에 맞서며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하게 새겨두고 싶은 부분은, 모든 이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통의 흔들리지 않는 가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고르카, 내일까지는 카트만두. 그리고 며칠간 태국을 정리하고 국제개발협력 2년의 첫 해외파견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 후 다시 곧 새로운 여정을 맞이할 테고. 무엇이 나의 일상이었고 현실인지 잘 실감이 나질 않는다. 슬픈 건지 속상한 건지 혹은 후련한 건지 아니면 미안한 건지 지금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네팔에서 습득한 모든 생각의 고리들이 천천히 잘 연결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