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레몬을 받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치앙마이 여행의 단상

by 초초

태국 치앙마이.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강물에 몸을 담가야 한다. 내 앞에 두세 명이 이미 들어가 있고 물은 허리춤 정도의 깊이라 위험해 보이지 않았지만 탁한 물에 몸이 젖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오전에 꽤 돈을 주고 산 노란색 새 옷을 입고 있던 참이었다. 새 옷을 입고 흙탕물에 몸을 담가야 한다니 윽.


머리를 쓰자. 새 옷은 벗어서 일단 다리 위에 던져 놓고 물을 건너는 거다. 그리고 다리 위로 올라가서 다시 가져가야지. 다리 위로 옷을 던지고 물에 몸을 담갔다. 한 발 두 발 강을 건너고 있던 순간, 아차. 갑자기 내 옷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던진 옷이 다리가 아니라 잠시 멈춰있던 버스에 사뿐히 착지했던 것이다. 버스는 새 옷과 함께 사라졌다. 새 옷을 더럽히기 싫어서 한 선택이, 아예 잃어버리게 하는 꼴이 되었다. 아… 돈 아까워.

태국 치앙마이 핑강


꿈이었다. 태국 여행을 떠나기 딱 2주 전이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이렇게 선명한 꿈은 오랜만이다. 더운 여름나라에서 노란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는 점 외에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교훈까지 남아서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꿈이었다. 몇 주 뒤 진짜 치앙마이에 와서는 마침 호텔 조식을 먹는 곳이 핑강 전망이어서 사색에 빠지기 딱 좋았다.


만약에 이 꿈이 현실이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할까. 정말 그 강물에 들어가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었을까? 앞서서 사람들이 건너간 걸보고 뒤꽁무니를 따라갔지만 사실 주위를 더 둘러봤으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룻배가 있거나 아니면 다시 뒤돌아가서 다리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을지도. 다양한 선택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지 않고, 쫓기듯이 남들 따라간 게 잘못이었다. 앞서 간 사람들이 내가 잃어버린 새 옷을 책임져 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니다. 그냥 새 옷이 젖는 것을 감수하고 입은 채로 건널걸. 더러워지는 걸 좀 참고 나중에 세탁을 맡기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애매하게 잔머리를 굴렸다가 아예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던진 옷이 버스에 착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예측 밖의 변수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사실 최근에 이 버스 같은 일이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고 치앙마이 여행을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귀중한 영감을 넘치게 얻었는데, 그중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 삶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마침 읽고 있던 데일 카네기 책에도 같은 구절이 나왔다. 그래, 두 번이나 이 문장이 내 귀와 눈에 들어온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


마치 신 레몬처럼 느껴졌던 사건을 계기로 만든 레모네이드는, 환상적인 맛이다. 잠시 당연했던 일상을 멈추고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멀리 내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신뢰가 더 두터워졌다. 글도 다시 쓰기 시작했고,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걸 위해 지금부터 뭘 해야 할 지도 정했다.


살다 보면 의외로 좋은 일도, 의외로 나쁜 일들도 생긴다. 삐딱한 자세를 좀 고쳐먹고 되돌아보면, 사실은 의외로 좋은 일들이 삶에서 훨씬 많았다. 그러니, 이미 잃어버린 새 옷은 잊어버리고, 강물에 몸을 담가 본 그 경험의 값어치를 인정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치앙마이 여행을 마무리하며, 약 한 달간 요동쳤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은 것이 느껴진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3년 독서 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