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간 함께한 회사를 떠나며

2019.03 - 2025.02

by 초초

2019년 3월부터 2025년 2월까지 - 나이로는 스물일곱부터 서른셋까지 - 6년 간 [와디즈]라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회사에서 일했다. 회사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나도 내 울타리가 더 크고 튼튼해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며 내 역할에 충실했다. 회사가 학교는 아니지만, 참 많이 배웠다.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기여보다는 배움에 초점을 맞춰 글로 남긴다.


시작.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나는 꽤 여러 회사를 거쳤다. 대학생 때는 인턴으로 PR 대행사, 공연기획사, 대기업 컨설팅 부서까지, 큰 연결성 없는 회사와 직무를 거쳤다. 졸업 이후에는 온라인 교육회사에서 B2C 마케팅을, 정보보안 솔루션 회사에서는 해외 B2B 마케팅을 했다. 냉정히 말하면 강력한 한 방으로 뭉치기는 어려운 경력들이다. 운이 좋게도, 경력보다는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보아준 고마운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6년 전 입사할 때 받았던 웰컴키트
구성원이 1백명이 막 넘어갈 때 쯔음 합류했다.

1년 차 : 프로젝트 A부터 Z까지 + 제휴


경험이 부족하지만 흡수가 빠른 사람의 장점은 0 to 1이 쉽다는 것이다. 회사는 막 시리즈 C 투자를 받은 시기였고, 나는 거의 프리 롤로서 프로젝트 단위로 새로운 일을 벌이는 역할을 했다. 들어오자마자 대학생 공모전을 열었다. 코로나 시국 전, 당시엔 잘 없었던 유튜브 라이브 교육을 처음 진행해 보기도, 믿을 만한 대행사 정보를 제공하는 ‘펀딩메이트’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지금보니 앳된 옛날 모습


이후로는 외부 제휴에 더 집중했다. 미리캔버스와 ‘스토리 디자인 서비스’, 현대그린푸드와 ‘모두의 맛집’, 라인프렌즈와 ‘펀딩 &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한진택배/CU편의점택배와 ‘와딜리버리’ 등 신규 메이커 고객을 발굴하고, 기존 메이커의 필요를 해결하는 여러 제휴 프로젝트를 론칭하고 운영했다. 이때, 프로젝트 단위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마무리 짓는 것, 회사 외부와 내부의 자원을 잘 합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당시 정리해 둔 글들을 가끔 보며 과거의 나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 제휴의 본질과 매
✏️ 효과적인 제휴를 위한 7가지 질문



2년 차 : 팀으로 일하는 것의 힘, 재미


주로 프로젝트 단위로 제휴에 초점을 맞춰 일하다가, 팀의 리더를 맡게 되었다. 사실 리더를 맡은 스스로가 어색했다. 팀원들이 보기에 어설프기도 했을 것이다. 다행히 캠페인 중심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꾼 건 좋은 수였다. 하나의 캠페인을 실행하기 위해 콘텐츠 마케팅, 퍼포먼스 마케팅, 교육, 제휴 기능이 모두 연결되어 일했다. ‘그린 메이커 캠페인’, ‘여성 메이커 캠페인’과 같은 의미 있는 메이커 마케팅 캠페인을 열면서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밤늦은 시간, 당시 붐이었던 클럽하우스로 행사를 운영하고, 사무실 불을 다 같이 소등하고 나가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같이 술도 참 많이 마셨다. 동료들은 솔직했고, 웃기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전문성과 역할이 다른 사람들이 뭉쳐서 팀으로 신나게, 가끔은 또라이 같이 광기를 살짝 섞어서 일하는 재미를 이때 알았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잘했던, 양파같은 메이커성장기획팀 멤버들



3년 차 : 사업 초기 시스템을 만드는 법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신사업을 육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메인 비즈니스인 펀딩 플랫폼을 바탕으로 성수에 공간와디즈 문을 열었고, IP사업, 스토어사업 등 새로운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사업개발’로 커리어 방향성을 조준하던 때였다. 그동안 해 온 제휴는 대부분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마케팅 제휴였는데, 나는 직접 돈 버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회사의 방향성과 개인의 커리어 골이 운 좋게도 잘 일치하여, 2년 전 기획했던 ‘펀딩메이트’ 프로그램을 사업화하여 ‘파트너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은 나 혼자였다. 동료애가 끈끈하던 팀에서 떨어지니 외롭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사업’이란 걸 해 본다는 설렘이 덮어버렸다. 할 일 투성이었다. 팔 수 있는 제품(서비스)과 가격도 정해야 하고, 서비스를 공급해 줄 협력사도 모아야 하고, 고객도 찾아야 하고, 계약서도 만들어야 하고, 전체 운영 프로세스도 짜야했다. 퍼즐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추구하기보단 소위 MVP라고 하는, 최소 스펙으로 ‘굴러갈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운 좋게도 바로 매출이 나면서 사업성이 빠르게 검증되었고, 든든한 초기 멤버 두 명이 합류한 덕분에 사업 시작 4개월 만에 월 매출 1억을 달성했다. 돈의 크기를 떠나서 꽤 상징적인 숫자였다. 당시 부사장님이 사 주신 고기 맛은 잊을 수가 없다.


함께 파트너사업을 쏘아올려 궤도로 올린 멤버들


회사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사업이란 걸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으로 느껴졌다. 대부분 새로운 것 투성이었지만, 이때 가장 크게 배웠다 느끼는 것은 ‘수익’ 창출 마인드셋과 스킬셋이었다. 수익 창출 마인드셋 - 비용과 기대수익 관점에서 의사결정하는 습관. 수익 창출 스킬 셋 - 숫자에 대한 감각과 매출 인식, 세금계산서 등 회계와 관련된 상식들.


실무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이상의 인풋을 얻고 싶어서 책도 나름 열심히 읽었다. 가장 도움을 받았던 책은 에이드리언 슬라워츠키 선생님의 <프로핏 레슨>, 이나모리 가즈오 선생님의 <회계 경영>, 이상훈 선생님의 <창업가의 습관>이었다.


사업개발에 대해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고자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 사업을 짓는 건축가, Business Developer



4년 차 : 사업의 성장과 효율화


파트너사업이 시작되고 6개월 동안 계속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초기 멤버 3명에서 7명까지 식구가 늘었다. 역할을 좀 더 분명하게 나누고, 정부 지원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스케일이 커지면서 시스템화가 필요해졌다. 휘발되던 것이 누적되어 관리되게 하고, 리소스를 많이 잡아먹는 것들을 간소화하고, 자동화할 수 있는 것들은 자동화하고, 뭉뚱그려 모호했던 것들은 명확하게 정의하는 일들이었다. 마치 리모델링을 하듯이, 팀원들은 불편한 곳을 찾아서 하나하나 개선을 해 나갔다.


워크샵에 진심이었다. 문제 해결 + 새로운 목표 세우고 뿌수기


예를 들어, 서비스 초기에는 파트너와 고객의 첫 미팅에 중개자로서 반드시 동석했었다. ‘이 과정이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이 있었고, (찬성파와 반대파가 있었지만) 결국은 없이도 큰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모호했던 서비스 상세 제공내역을 숫자로 명확히 정했다. 계좌이체로만 받던 계약대금을, 페이 시스템을 도입해서 카드결제도 가능해졌다. 중도 취소, 환불에 대한 정책을 세웠다. 파트너들의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페이지도 만들었다.


일단 만들었던 임시방편이 정답처럼 굳어질 즈음 뜯어고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 혼자라면 절대 못 했을 일들을, 더 나은 방법을 자발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하는 훌륭한 동료들이 있어 사업은 계속 나아갔다. 처음으로 한 해를 꽉 채운 사업의 연 매출은 24억 원. 보기에 따라 작은 숫자 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만든 의미 있는 성과였다. 2022년 이 시절을 함께했던 동료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청춘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직 중인 사진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나자, 나는 내 밑천이 드러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풋이 부족한데 아웃풋을 계속 내야 하는 압박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패스트 스타터의 딜레마라고 했다. 출발할 때 힘을 잔뜩 주어 여기까진 도달했는데, 그다음 목표를 어디로 찍어야 할지. Next가 보이지 않았다.




5년 차 : 다시 0에서 시작하는 법


내가 찾지 못하는 Next를 그려 줄, 리더가 필요했던 것 같다. 당시 대표님 직속으로 일하고 있었고, 훌륭한 스승이셨지만, 회사 전체를 관장하셨기 때문에 내가 풀지 못한 숙제를 대신 풀어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입장이라 생각했다. 내 위로 리더 분이 부임하고 나서, 나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 과정에서 팀이 크게 힘들리는 위기가 찾아왔었다.


이때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은 ‘지속가능한 조직 없이는 지속가능한 사업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간 운 좋게도 좋은 동료들과 큰 탈없이 끈끈하게 일했기에 어쩌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대단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팀과 사업의 창립 멤버이기 때문에 오는 여파였다. 내가 정말 더 탁월했다면 미리 잘 대비했어야 했다. 돌아봤을 때 내 부족함을 더 느낀다. 회사와 팀원들이 도와준 덕분에 우여곡절 끝에 팀을 이끌어줄 후임이 결정되었고, 예정했던 것보다 3개월 후에 새로운 직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일은 ‘해외사업.’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해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Next에 대한 개인적 동기를 잃은 상황에서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해외사업은 2년 전 파트너사업을 시작했을 때 보다 더 아무것도 없었다. 파트너사업은 ‘펀딩메이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요가 확인된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해외에서 기회를 찾는다는 것 외에 정해진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다. 다시, 0 to 1이었다.



6년 차 : 해외사업


여기에 다 남길 수는 없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다.


"삽질하는 것 같아요." 6개월 쯤 지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이것 저것을 해 보았는데도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답답함에 대표님을 찾아갔다. 입사한지 근 5년 만에 처음으로 독대를 요청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어려운 존재이셨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좀 소심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것은 그만큼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절실함 때문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사업개발은 삽질이 맞다."란 거였다. 그런데 삽질을 잘 하는 사람은 어디를 파야할 지 잘 캐치하고, 한 번 팔 때 깊고 넓게 파서 여기가 아니라도 그 다음에 팔 곳을 빠르게 정한다는 것이었다. PMF (Product Market Fit) 이라는 있어보이는 용어보단, "내 것을 사줄 놈을 찾는 것," 그게 사업개발이라고 하셨다.


이후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사업화의 힌트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 성장이 따라왔다. 해외사업을 추진하며,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진 못해도 해외 파트너와 비즈니스를 논할 만큼은 능숙해졌다. 해외 파트너와의 계약, 무역과 관련된 실무 지식, 특히 수입에 대해서 A to Z를 경험했다. 중국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유능한 팀원이 합류하면서, 중국, 대만, 일본에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나를 믿고 같이 삽질 해 준, 내 유일한 팀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해외 메이커 제품을 우리 플랫폼에서 메인으로 론칭하는 공식 협력사를 육성했고, 회사 최초로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영업담당자를 세팅했다.


그리고 이 일을 마지막으로, 6년간 함께한 회사를 졸업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고 키워가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월급 받으며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브런치의 내 소개 글이다. ‘사업’을 내 손으로 일궈보며 배우고 싶은데, 회사 안에서 안정적으로 해 볼 수 있으니 짱이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회사 안에서의 안정이 오히려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회사 안이 좋아서가 아니라 회사 밖이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직면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타이밍이 왔을 때 - 내가 없이도 이 일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 퇴사를 이야기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참 차분했다. 이미 소용돌이 같은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고 있던 일들을 정리하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섰다.


여기까지가 사회인으로서는 아직 말랑말랑하던 20대 후반의 내가, 6년의 시간을 거쳐 나름의 자기 확신을 가지고 ‘내 일’을 해 보겠다고 나선 30대 중반의 이르기까지의 여정이다.


그 여정 가운데 얻은 교훈이 수도 없이 많지만, 내 가치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신뢰가 전부다.
적어도 한쪽이 믿음을 줘야 뭐든 시작된다. 얻기 힘들고, 잃는 것은 그보다 쉽다.
일은 즐기는 것이고, 몰입하면 즐겁다.
혼자도 좋지만, 다 같이 몰입하면 차원이 다른 즐거움과 결과물이 있다.
시스템 중요하지 - 근데 인간성을 희생하진 말자.
개인의 고유함을 무시하다 오히려 효율 무너지고 더 큰 것을 잃는다.
실무 감각을 잃지 말 것. 직접 손에 흙 묻혀야 한다.
고객 한 명도 직접 안 만나고 사업을 한다고? 상상에서 시작되더라도 반드시 실체와 가까워져야 한다.
태도가 좋지 않은 파트너와는 일하지 않는다.
마음을 열고 알아가되, 직관을 믿자. 뭔가 쌔하다 싶으면 나중에 분명 돌아온다.
‘하고 싶은 마음’을 귀하게 여기자.
스스로 속이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걸 발견하는 데 인내심을 발휘하자.


가치관이라는 건 면역체계 같아서, 여기서 벗어났을 때 “이거 뭔가 잘못되었다” 하고 신호가 온다. 어떤 일을 하면서 먹고 사던, 위 가치관은 변치 않겠다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

글을 맺으며.

일하는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독립을 응원해 준 남편, 6년 간 저와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함께 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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