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인 더 게임의 시작
2025년은 내 인생의 마일스톤으로 할 만한 일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여러 동기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스킨 인 더 게임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직관이었다.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은 워렌 버핏이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개념으로, 의사결정의 결과에 대해 말이 아니라 자기 돈으로 책임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남의 돈이 아닌 내 돈을 걸고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 결과에 책임지며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하고 지난 10개월 간 해외 브랜드 총판 사업의 기본 운영 파이프라인(소싱 - 수입 - 마케팅 - 물류 - 운영)을 만들고 계속 돌리면서 사업을 차근차근 키워왔다.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이제 생존을 넘어 더 큰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정도의 기초는 닦았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강점이라 여기는 부분(구조화, 창조), 하고 싶은 일(해외 사업), 그 간의 경험(마케팅, 사업기획/운영)을 모두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이 일을 선택했는데, 옳은 선택이었다 생각한다. 더불어 이 일에 있어서 핵심적 역량이지만 MD출신이 아니라서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시장성있는 상품을 보는 안목을 집중적으로 키울 수 있었다.
많은 창업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한다. 나는 제조가 아닌 유통사업이기 때문에 지원사업을 받기 불리하기도 했고, 선발이 될지 안될지 모르는데 그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사업자등록을 미루는게 더 리스크가 커 보였다. 나중에 브랜드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유통부터 하면서 월급이 아닌 돈 버는 방법부터 빨리 체득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열심히 모아 온 노동 소득과 가족의 지원으로 사업 실전에 빠르게 돌입했다.
체질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9년 간 월급쟁이로 살면서, 잃는게 무서워서 주식 투자도 잘 못하던 내가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갑자기 위험을 잘 감수하는 사람으로 바뀌진 않는다. 회사 안에서 사업개발을 하면서 최악의 경우는 잘리는 것이지만 내돈내사업은 개인 입장에서 훨씬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 아직 완전히 체질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실패는 참 쓰라렸다. 회사도, 정부 돈도 아닌, 내 소중한 노동소득으로 이 게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스킨 인 더 게임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이브한 의사결정에 의한 상품 소싱,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수없이 많은 시도들. 실패와 함께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실망감과 불안감. 조용하다가 일이 터질 땐 왜이렇게 한꺼번에 터지는지. 걱정과 긴장감. 일희일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특히 사업 초기에 무탈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을 바라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 디폴트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는 이성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내가 가장 부족한 부분이고, 남편에게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손정의가 이야기 했듯, 매번 이기는 것을 바라지 말고. 작게 지고, 크게 이기는 것을 도모해야 한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Downstream)하는 과정, 그리고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장치를 만들면서(Upstream) 생기는 자신감이야말로 그 사업의 단단한 성벽이 된다. 무탈하게 운빨로 쌓은 성과 근거없는 자신감은 운이 사라지는 순간 스러져 내린다.
물론 운이 좋았다 생각하는 일들도 있었다. 사업을 하며 신기하고 재밌는 점은, 애쓰고 노력한 곳에서 성과가 안날 때가 수없이 많지만, 너무 높아보여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가 덜컥하고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올 해 가장 큰 행운 2가지를 꼽자면.
“이 연예인이랑 우리 제품 진짜 잘 어울리는데”
> 우연한 기회에 그 연예인이 우리 제품을 소개했고 인지도 상승과 판매에 큰 도움이 되었다.
“(백화점에서) 여기에 언젠가는 우리 제품이 진열되면 좋겠다”
> 내가 딱 원하던 그 곳에서 먼저 제안이 왔고 1월부터 5개 지점에서 판매하게 되었다.
‘이거 되면 진짜 좋겠다’ 하고 캡처해두거나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힘들다가도 다시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포커스를 나의 멘탈에서 사업 그 자체로 옮겨보면, 규모화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나는 1인 체계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매출, 수익화, 효율성 구조를 만들고 인력 충원은 가장 마지막 순으로 정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통제가능한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사업 안정성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마다 통제가 쉬운 영역도, 어려운 영역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사람을 컨트롤(동기부여 등)하는 것이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라 생각되어 우선 후순으로 남겨두었다. 작은 회사를 위한 AI툴과 서비스가 너무 잘 발달되어 있는 덕도 크다.
올해는 모아둔 돈과 내 노동력 + 최소한의 아웃소싱으로 운영하며 사업이 돌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휠을 만들었고, 내년에는 스케일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케일업의 전 단계, 프리 스케일업을 위해 좀 더 이 휠을 키워보자는 방향성을 세웠다. 정부 지원사업, 정책 자금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레버리지를 도모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
매년 키워드를 정하는데, 2025년 키워드는 ‘안목’이었다.
그리고 2026년의 키워드는 2가지다.
resilience & leverage
resilience = 비즈니스 오너인 나의 내면, 태도
leverage = 비즈니스 전략, 운영 측면
2025년 큰 용기를 내어 변화를 선택한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선택을 가능케 한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귀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한 해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또 새로운 한 해를 기쁨으로 맞이한다. 재밌게 해 보자, 202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