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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fa Jul 23. 2021

[#16공남쓰임] 2021.07.19아들 생일

오후 6시 38분, 3.49kg으로 태어남

아내와 대화도 많이 하고 블로그도 써가며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That's nono. 다행히 가족분만을 통해 아내가 10개월간 품었던 아이가 자연분만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강하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엄마의 위대함을 느꼈다. 기록을 위해 가족분만의 경험을 남겨둔다.


2021.07.19 오전 7시

예정일을 넘긴 상태여서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기로 하였다. 입원하는 순간부터 출산까지 산모는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으로 소화가 잘 되는 죽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임신성 당뇨라서 흰쌀은 피하고 있었는데 에너지원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흰쌀 죽을 먹으라고 하더라, 신기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내진, 혈당체크를 포함하여 기초적인 검사들을 수행했다. 자연분만 준비의 스페셜 타임은 '관장'인데, 좌약을 넣고 오래 참을수록 깔끔한 자연분만이 가능하단다. 1분도 견디기 힘들다는 그것을 아내는 6분을 넘게 참았다. 리스팩 ㅋㅋ


오전 8시

혈당 수치는 흰 죽 때문에 당연히 최고를 찍었기에 포도당 투여는 못했고, 수액과 출산 촉진제를 투여했다. 드디어 뭔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들었지만 바로 약발이 오진 않았다. 오히려 도착하자마자 진행한 내진으로 촉진이 되어서 아프기도 하고 양수도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전 9시 30분

아이 심박수가 갑자기 떨어졌다. 120~150 bpm으로 잘 뛰고 있던 심박수가 80 bpm 미만으로 갑자기 떨어져서 심박수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들렸다. 우리는 놀랐지만 간호사분들은 여유롭게 들어오시더니 아내에게  능숙하게 촉진제 투여를 줄이고 산소호흡기를 씌운 다음 크게 심호흡을 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인듯했다. 촉진제나, 골반에 끼었을 때, 급격한 불안감을 아내가 느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곤 한다는데 우린 세 번 정도 이런 이벤트가 있었는데 아주 능숙하고 편안하게 아이의 심박수를 정상으로 돌려주셨다.  간호사 짱짱


오후 12시

배가 고팠다. 아내는 금식이라 아무것도 못 먹었지만 나는 철부지 아빠라 출산 가방에 챙겨 온 간식들을 주섬주섬 먹었다. 그렇다. 아내가 눈총을 줬지만 눈치가 없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아내가 안됐지만 내 입은 움직이고 있었다. 선을 넘었다. 내가 불쌍했는지 아내가 크게 질타하진 않았다. 착하다. 그리고 드디어 아내의 배가 슬슬 아파지기 시작했다. 촉진제와 내진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통이 시작되는데 총 4시간이 걸렸다.


오후 2시

아내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간호사들이 내진을 수시로 했지만 크게 변화가 없다가 통증이 시작되니 경부가 3cm 보다 좀 더 열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는 더 진통이 오기 전에 무통주사관을 삽입해놓자고 하셨고 위치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요추 1,2번 어딘가에 주삿바늘을 삽입해뒀다.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내랑 말동무를 해주고, 손잡아주고, 어깨를 주물러주는 등 감정적인 케어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통증이 시작되니까 통증을 줄여줄 수 있는 좀 더 강한 마사지가 필요해졌다. 발마사지와 허벅지, 종아리 마사지가 효과적이었다. 


오후 2시 30분

점점 진통이 세지며 복통과 허리 통증이 함께 오기 시작했다. 4-5분에 한 번씩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구체적으로 아픈 부위를 마사지해주면 통증 경감 효과가 더 좋다고 하여 척추선 바로 양쪽 부위를 따라서 아픈 부위를 꾹꾹 세게 눌러줬다. 하지만 통증 경감일 뿐 절대적으로 통증을 사라지게 할 순 없었다. 이때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 T^T


오후 3시 45분

1시간 15분 동안 아내는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진통을 참았다. 드디어 간호사가 4cm 이상 경부가 열린 것을 확인하고 무통주사를 놔주었다. 통증이 정말 씻은 듯이 사라졌고 아내가 좀 편안해졌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서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아내의 손을 잡고 좀 졸았다^^ '자냐? 잠이 오냐?'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 아냐 안 잤어! 짜장면 먹는 꿈을 꿨어!'라고 말했다. 선을 넘었었다. 아내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돌렸었다.


오후 5시 45분 

두 시간이 흐르자 무통주사의 효력이 끝났다. 1분 내외의 간격으로 진통이 오고 간호사는 본격적인 출산을 위한 힘주기 연습을 시켜주었다. 2시 30분부터 무통주사를 맞기 전까지 1시간 15분 동안에도 아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의 출산 시간까지가 엄마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진짜 순간이다. 침대 양쪽에 봉을 설치하더니 그걸 잡게 하고, 다리를 쭉 벌려서 개구리 자세로 앉게 한다. 그리고는 진통이 올 때 온 힘을 다해 코어를 쪼여서 아이를 낳게 하는 게 기본 원리인데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내가 쥐어짜는 동안 잔뜩 올라간 어깨와 머리를 뒤에서 쿠션으로 받쳐주는 일밖에 없었다. 힘을 줄 때마다 15초 정도 숨을 참고 쪼이는데, 얼굴부터 목까지 실핏줄이 실시간으로 터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진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한 번씩 힘줄 때마다 '이거 그냥 포기하고 제왕절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빨리 낳아야 저녁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단했다.


오후 6시 25분

나는 쫓겨났다. 이제 분만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의사 선생님, 아이 받침대, 체중계, 수술도구, 핀 조명, 간호사 3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내 혼자 남아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고 간호사는 아내의 배를 누르고 있다. 문 너머로 보이진 않고 소리만 들렸다. 밖에서 간호사들이 계속 앉아서 대기하라고 했는데 앉을 수 없었다. 정말 인생에서 제일 긴 10분이었다.


오후 6시 35분

날 들여보내 줬다. 마지막 한두 번 남았다고 남편이 뒤에서 받쳐주면서 힘을 보태주라 하셨다. 1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내는 진짜 거의 실신 직전으로 지쳐있었고, 딱 내가 의학 드라마에서 보던 그 장면 그대로 의사 선생님이 완전히 180도 가까이 벌어진 아내의 골반 앞에 핀 조명과 함께 앉아있었다. 


오후 6시 38분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다 나왔다. 어깨가 넓어서 잘 안 나오네~' 하더니 아이를 옆으로 돌려서 잘 빼내셨다. 아이가 힘차게 울면서 꿈짝 꿈짝 거리는 것을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신나게 울던 아이가 아내 옆에 딱 뉘어주니 울음을 멈추고 실눈을 뜨고 아내랑 눈을 맞췄다. 진짜 갑자기 온 세상이 평온해지는 그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내도 그때 아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단다. 드라마에서 그런 연출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연출자들 대단하다. 우리 엄마가 그거보고 왜 우셨었는지 이해했다. 나도 계속 눈물이 터져 나오는데 이게 뭐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오묘~ 하다. 글로 쓰질 못하겠다.


총, 10시간 38분, 아픈 시간으로 따지면 2시간 반 정도였다. 중간중간 간호사가 아내에게 해준 처치나 아내와 내가 함께 그 방에서 나눈 대화들은 모두 생략하고 굵직한 경험만 기록했다. 첫 아이 출산치고는 꽤나 순산했단다. 아내가 평소에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한 식단으로 관리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족분만 경험은 임신기간 10개월을 짧고 굵게 갈무리해준 기분이랄까? 아들이 태어나면서 우리의 생활이 2nd phase로 넘어가는 좋은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신생아실에 보내고 상황이 정리된 후, 아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 심하게 말하고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했어.'라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그냥 내 모든 게 짜증 났었다고 한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 줘서 진짜 고마웠고 사랑스러웠다. 나도 10시간 동안 눈치 보느라 진짜 힘들었다. 그리고 실수도 했었다. 과자 먹고, 졸았던 것은 내가 선을 넘었었다. 남편들 긴장해야 한다.


이 글을 보는 예비 엄마 아빠들은 자연분만 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용도로, 이 글을 우리 아들이 보게 된다면 그냥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가 태어났다는 기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나의 생일은 그냥 막연히 엄마 아버지에게 고맙고 생일선물을 받는 날일 뿐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이런 경험을 했던 날이라 생각하니 좀 새롭게 다가왔다. 진짜 10시간 동안 별 생각을 다했었다, 아내와의 결혼부터 임신기간까지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올 아이의 미래까지 온통 집중해서 생각해보는 하루였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를 봤을 때 '네가 권이로구나. 어서 와'라고 했던 것 같다. 아들의 이름은 윤권(尹權 만 윤, 권세 권)으로 지었다. 아내와 나의 성을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다. 우리 둘 사랑의 결실이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와서 지은 이름에, 아들 이름으로는 아주 당찬 힘이 느껴지는 이름이라 완벽하게 지었다고 생각한다. 매년 7월 19일은 권이의 날이다. 생일을 챙겨줄 때마다 고생했던 아내를 한번 더 존중하고 사랑하며 아들에게 듬뿍 사랑을 주는 하루를 보내도록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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