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7> 글쓰기와 말하기의 관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은 누굴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누구를 말할 것인가. 많은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처럼 감동적인 연설을 했던 분도 있다. 유재석이나 김재동 같은 말 잘하는 연예인도 있다. ‘구라’라는 수식어를 붙을 만큼 말을 잘하는 황석영이나 유홍준 같은 분들도 생각날 것이다.
이걸 다시 특정해 강의를 하는 사람 중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누군가요를 물으면 또 다른 답이 나온다. 요즘 인기강사로 꼽히는 유시민이나 강원국 작가도 있을 것이고, 김창옥이나 김미경 같은 전설적인 스피치 달인도 있다. 또 강의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쌓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은 좋은 강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유료 강의가 있기 때문에 전문 강사들도 많은데, 그들 가운데는 상당히 저명한 이들도 있다. 필자도 ‘강사야’라는 강사 사이트에 프로필을 등록해 두었는데, 얼마나 좋은 강사가 많은 지 한 번도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말을 잘하는 것은 시대를 벗어나 중요한 재능이다. 고대 동서양에는 수많은 말 잘하는 사람들의 경연장이 있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광장에서 사람들을 설득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재능이었다. 동양은 더 심했다.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세객(說客)들이 자신을 써 줄 군주 앞에 찾아가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잘하면 곧바로 재상도 될 수 있지만, 안 그러면 평생 빈궁한 삶을 살아야 했다. 강태공은 평균 연령이 30세 가량인 시기에 자신의 말을 알아줄 사람을 찾다가 70세에야 주문왕을 만나 패업을 이뤘고, 자신도 제나라의 왕이 될 수 있었다. 말은 그만큼 중요했다. 이 과정에는 이사에게 당해 죽는 한비자 같은 지식인도 있고, 세치혀로 합종연횡에 성공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같은 인물도 있다.
그런데 말과 글을 별로 떨어져 있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서거했을 때,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 영결식에서 절절하게 울던 모습은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글과 말에서 큰 스승 역할을 했다.
말과 글은 많은 이들에게 먹거리 역할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연설문을 쓰고, <대통령 글쓰기>와 <강원국의 글쓰기>로 필명을 얻은 강원국 작가는 <어른답게 말합니다>라는 말공부 책으로 인기를 얻고, 강의현장을 누비면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유시민 작가도 글쓰기로도 유명하지만 <알쓸신잡> 등에 출연해 다양한 언변으로 펜층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가장 특징은 시너지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말을 잘하니, 그들이 쓴 책도 사서 읽고 싶고, 글을 보니 강의도 듣고 싶어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내게 가장 궁금한 것은 누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연설비서관으로 낙점받은 이는 신동호 시인이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도 전대협으로 인연이 있는 그는 강원고 3학년 때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될 만큼 필명을 날렸다.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도 연락을 기다렸을 수 있지만 사실 문재인 대통령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당시 문장을 쓴 강비서관은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나는 가끔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통령 연설문을 보곤 하는데, 신비서관도 탄탄한 논리에 문학적 재능까지 겸하고 있어, 아주 인상적인 글을 쓴다. 물론 그건 글이자,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청와대 연설문은 한 사람의 작업이 아니라 그 사무실에 있는 공동 작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연설비서관의 무게가 가장 높다.
청와대에서만 말과 글이 융합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황석영이나 유홍준은 말보다는 일반인들에게 글로 더 익숙하다. 사실 두 분은 알려진 것보다 달변은 아니다. 황석영 작가에게 부여된 ‘황구라’라는 별명은 소설 ‘장길산’을 신문에 연재할 때,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이 잘 나오는 것이 신기해 기자들이 붙인 호칭이다. 실제로 황석영 선생은 공개 강연할 때는 진솔한 이야기를 하려는 진심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데, 별명처럼 남들이 혹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유홍준 교수 역시 강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종횡무진하는 지식이 도드라지지 언변 자체가 탁월하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글이다. 필자 역시 글을 쓰고, 말을 한다. 강연은 중국, 투자유치, 관광, 노마디즘 등 다양한 분야를 이야기한다. 방송에도 여러차례 방송에 출연해서 말할 일들이 있었는데, 특별히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강연 방식이 아니라 리포터 형식으로도 방송한 적이 있다. 과거 국민TV라는 채널에서 내 책 이름을 따서 ‘달콤한 중국’이라는 중국 관련 코너의 패널 역할을 오래했다. 새만금청에 근무할 때 였는데, 진보매체에 나간다는 것이 꺼렸지만, 공직 사회의 답답함을 푸는 통로로서 나쁘지 않았다.
사실 사람은 말이나 글을 통해 속을 내보내야만 살 수 있다. 특정한 상황이지만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에서 보여주듯,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으면 울화가 쌓인다. 물론 말은 항상 화를 부르기도 한 만큼 정말 조심해야 하는 행위다.
그러면 말과 글의 차이는 어떻고, 어떻게 하면 말이 좋은 글로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글과 말의 달인 강원국 작가는 <나는 말하듯이 쓴다>라는 두꺼운 저작을 통해 말이 글이 되는 방법을 정리했다. 부족한 내 글을 읽을 필요없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다만 너무 길어서 내 나름대로 짧게 줄이면 이렇다. 강작가는 이 책의 원칙을 세가지로 말한다. 1.평소 말하는 만큼 자주 쓴다. 2.말 같은 구어체로 자연스럽게 쓴다. 3.먼저 말해보고 쓴다라고 한다. 작가 스스로 뻐기지만 이런 습관은 이상한 게 아니다. 보통 대통령 연설문을 쓸 때, 먼저 대통령에게 연설할 내용을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만든 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수정 작업을 해가기 때문이다.
강원국 작가도 강조하는데, 대통령의 1년 말 가운데 가장 준비를 많이 하는 것이 광복절 기념사다. 일단 복잡한 한일관계의 상황을 규정해야 하고, 이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뜻을 한 곳에 모으는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대선 캠프에 있을 때 이런 글을 많이 쓰곤 했는데, 한번 말이 글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들을 개인적으로 몇가지 정리해본다.
첫째는 말을 듣고, 글을 읽는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뜸하지만, 각종 모임에서 좌중이 돌아가면서 인사말을 할 때, 비교적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천부적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일 수 있지만 그 자리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준비한다고 누구나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없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 자리에 맞지 않으면 엉뚱한 말이 된다. 내가 생각할 때 말 잘하는 사람으로 이낙연 전 대표도 손꼽힌다. 이 대표는 어떤 자리에든 그 자리에 맞는 말을 잘한다. 그 이유를 <낙연쌤의 파란펜>을 쓴 박상주 기자는 맥락을 파악하고, 사실과 진심을 강조하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말이든 글이든 그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면 안된다. 그것을 ‘마음의 탁본을 떠라’고 말한다. 또 청중의 마음을 읽고 그에 맞는 말을 하라고도 한다.
둘째는 유머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강원국 작가는 상당수의 책이나 강연에서 경처가(驚妻家) 행세를 많이 한다. 아내가 하면서 너스레를 떨고, 모든 우주가 마치 아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한다. 부인이 실제로 한 전문 신문사에서 책임자급으로 일한 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만 이건 강작가 특유의 유모 코드로 보는 게 맞다. 강작가는 기업 회장부터 대통령까지 꽤 중요한 인물들의 기록자로 살았다. 이후 청와대를 나와서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얼마되지 않아 쓴 <대통령의 글쓰기>가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후에는 일탈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따라서 이야기라고는 어릴 적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가 쓸 수 있는 유머 코드로 이것 밖에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유명해지는 것이 좋은 점도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최악이다. 어떻든 각자 유머 코드를 챙겨야 한다. 필자도 어릴적부터 유머에 관한 책을 보면서 남들을 웃기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이미 생긴 게 진지한데, 웃기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남들에게 웃음을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김대중 대통령이나 이낙연 전 대표의 아재개그도 그 정성이 놀라워 웃어줄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말과 글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게 하라는 것이다. 말과 글은 각기 장점과 단점이 있다.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만큼 충동적으로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글은 머리 속에서 손가락 끝까지 가는 거리 만큼이나 먼 만큼 상당히 조심스럽게 한다. 평소 말이 글이 되는 과정을 몇 번 거치면 상대적으로 말은 더 논리적이고, 예절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
말이 글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말로 해볼 필요가 있다. 말을 하게 되면 장애가 없이 진행된다. 그리고 녹음을 통해, 그 말을 서서히 글로 만들어갈 수 있다. 말은 오랫 동안 해온 습관이 있다. 그래서 미리 준비 안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말을 하고 있으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갈래를 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미리 말을 해보면 도움이 된다. 이런 작업이 도움이 되는 것은 말을 글로 바꾼 구어체 문장이 사람들에게 휠씬 잘 읽힌다는 점이다. 또 말을 할 때는 단문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다. 단문으로 쓰는 습관은 글을 쓰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습관중에 하나인데 말을 하고, 그것으로 글을 쓰면 단문 습관을 들일 수 있다. 말을 들을 때, 상호 연관관계가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글로 쓰다보면 그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면 말도 조리있게 체계를 잡아서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네 번째는 좋은 말, 좋은 글을 쓰라는 것이다. 난 어른이 되고 나서 가능하면 남들의 흠을 잡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특히 없는 사람에 대한 평은 절대 하지 않는다. 좋은 평도 굳이 꼭 필요한 경우라면 가능하면 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 말하는 사람과 연관성이 있는 좋은 부분이라면 말을 한다. 내 아내도 가능하면 그런 말들을 조심한다. 그런데 우리가 부딪히는 세상은 정말 많은 말들이 오가고, 거기에서 상처를 받는 이들도 많다. 나나 아내도 비슷한 일을 당해본 적이 많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회사나 조직이 이런 나쁜 말들로 멍들고, 사라져가게 되는 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글도 마찬가지다. 착한 글들이 있다. 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글들도 착한 글 중에 하나일 것 같다. 실제로 ‘좋은 생각’이라는 저명한 잡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세상이 좋은 일들이 많이 담겨있고, 사람들은 거기에서 긍정 에너지를 받는다. 그래선지 그 잡지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아마 세상에는 착하고,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이나 글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17권의 책을 내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글을 쓰는 나는 지금도 맞춤법에 자신이 없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국어점수도 나쁘지 않았는데, 지금도 맞춤법에 자신이 없다. ‘우리말 겨루기’라는 방송이 있는데, 나는 잘 보지 않는다. 괜히 내 말 실력이 드러날까 봐서다. 때문에 글을 쓰다가도 헤깔리는 표현은 검색을 통해서 확인한다. 그런데도 수없이 틀린다. 한글 맞춤법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틀려도 큰 흠이 아니다. 필자처럼 원고를 끝낸 후 한글 맞춤법 프로그램으로 가서 확인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세상도 나를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당연히 시스템이 내 글을 검토해서 교정한다. 대신에 나는 아주 특정한 논점의 차이가 아니라면 내 글에 손대는 것을 막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아주 빨리 쓴다. 아주 중요한 원고가 아니라면 한번 쓰고 올리는 일도 많다. 물론 오자나 비문도 많지만 차츰 고쳐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고칠 일도 없다.
말도 큰 차이는 없다. 대화를 통해 소통해야만 다음 결과가 나온다. 겁이 난다면 더 발전할 수 없다. 필자는 강연 요청이 오면 어지간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일단 강연 주제가 오면 그 분야에 대한 보충 공부를 한다. 이후 엉성하지만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면서 하나하나 공간을 채워간다. 한 시간 강연이라면 10분 정도 더 넉넉하게 준비한다. 물론 시간을 잘 조절해 자료가 남게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파악한 후에는 불필요한 것을 빼면 된다. 말에 대한 공포가 가장 심한 직업 가운데 하나가 기자다. 특히 긴 인터뷰 등은 많이 부담스럽다. 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인터뷰이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가 안되면 좋은 질문도 끌어내기 힘들지만, 상대방의 답변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다음 단계로 나갈 수도 없다. 언론사에서 사고가 나는 경우는 기자들이 꼭 해야할 반론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약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고생을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반론을 들었다면 나중에 위험은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어지간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라는 말로 커버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