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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글감을 찾아라

<글쓰기-6>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애라

by 조창완

나는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 그런데 하루에 A10장은 거뜬히 쓴다. 그중에 보면 나름대로 쓸만한 글도 나온다. 내 글의 부족하다는 것은 당연히 증명할 수 있다. 열댓권의 책을 냈지만 큰 베스트셀러는 없다. 유명한 출판사에서 내서 좀 나간 책은 있지만, 꽤 저명한 출판사에서 냈는데, 망작도 있다. 그렇다고 자비 출판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끊임없이 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쓴다. 대선 캠프에 있으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썼다. 내 업무가 오면 그 업무를 최대한 하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쓰거나 필요한 정보 습득을 했다.

결국 쓰면 양이 쌓이고, 책이 되기도 하고, 인기를 끌게 하기도 한다. 시민기자를 양성해 글을 쓸 수 있게 한 오마이뉴스는 재야에 있는 많은 고수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김혜원 기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스타 글쟁이로 부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전까지 기자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전문기자보다 더 글을 기민하게 쓰는 이들이 많다. 말 그대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도처에 고수들이 있었다.’(人生到處有上手) 그전까지 그들은 글을 쓸 판이 없었는데, 판을 깔아주니, 비로소 신나게 한판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구에게 평가를 받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나는 글을 쓸 거라 다짐한다. 문제는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그런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글을 쓰는 힘을 백승권 작가는 글 근육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글을 쓰다 보면 글 근육이 생깁니다. 누적적으로 꾸준히 쓰다 보면 아주 단단하고 촘촘한 근육들이 생겨요. 그런 사람들은 글쓰기가 과제가 주어지거나 글을 쓸 상황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쓸 수가 있죠. 결국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야 해요.”

상대적으로 강원국 작가는 글을 쓰기 의해 생각 근육을 키우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각 근육의 핵심은 호기심을 키우고, 깨어 있으라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요즘 정치를 보다보면 수없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쓰는 오마이뉴스에 관련 글을 써서 올리면 된다. 그러면 편집진들이 무시하거나, 채택해 사람들이 볼 수 있게도 한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 내 글이 남들이 볼 수 없게 한 글들이 있는데, 모두 정치에 관한 칼럼이다. 오마이뉴스 편집진과 내 정치적 코드가 다르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정 화가 나면 쓸텐데, 최근에는 자제하는 편이다. 내가 관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 생각은 이미 정해놓은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 고집을 안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과, 지인과 타협을 위해 그들이 필요한 글을 쓸 가능성이 없다. 내 양심에 벗어나는 글을 쓰고 싶지도 않고, 쓸 이유도 없다.


한국언론진행재단이 있는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는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문구와 펜이 있는 조형물이 있다. 기자 등 직업인으로 글쓰기는 이 만큼 엄중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들의 글쓰기는 자유롭다. 요즘 같이 SNS가 보편화된 시대에는 이동전화에서 단상을 정리하고 바로 올릴 수 있다.

수많은 지인들이 그것을 보고, 반응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론이 두렵거나 혹시 실수가 있을까봐 이런 글도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라면 책쓰기는 고사하고, 한편의 제대로 된 문장을 쓸 수 없다.


글쓰기가 두려운 것은 글쓰기가 무슨 고귀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그런 고귀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말도 안되는 글을 써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요즘은 말도 안되는 말이 넘치는 시대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을 순식간에 뒤집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두 증거가 있는 데도 그런 경우가 많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말할 수 있는 정확한 기초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말은 흔들린다. 글로 명확히 써둔 말은 상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경험을 끊임없이 해야만 나중에는 제대로 된 자신의 생각을 잡아낼 수 있고, 사고도 성숙될 수 있다.


그럼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할까.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노트의 첫 공간을 보거나 컴퓨터 커서를 보는 순간 백지장처럼 하해지는 경험이 많을 것이다. 거기서 뭐가 들어오지 않으면 끝난다. 나는 가능하면 첫 글을 에세이를 쓰라고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쓰는 글의 대부분이 설명문이다 보니, 감정이 매말랐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좋은 글의 시작은 읽는 이에게 상상을 불러 일으키고, 공감을 주는 글이다. 관념적으로 초겨울이 온다는 말 보다는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위태위한 빨간 슬픔의 홍시'(이재무 시 '기다림 중에서)나 ‘마지막 간댕이던 포플라 잎도 이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군요'(박희진 시 '초겨울 햇빛' 중에서)처럼 보이는 것의 실질적인 묘사로 시작한 글을 휠씬 공감도 크고 주목도도 높다.


그리고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만큼 일단 쓰면서 자신의 글솜씨를 늘리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낫다. 좋은 글로 가는 가장 좋은 습관 중에 하나는 단문을 쓰는 것이다. 한 글 안에 주술관계로 엮어진 몇 개의 문장이 중첩되면 읽는 사람은 괴롭다. 단문 쓰기로 유명한 작가가 김훈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칼의 노래),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남한산성) 등 함축적인 문장으로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물론 초심자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서는 쓸수 없다. 필자의 경우 격주로 쓴 주간지 서평의 시작도 가장 고민스러운 것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택한 방식이 책을 본 내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해 그 느낌을 쓴다.

‘근대가 하나의 몸이라면, 얼굴은 분명히 프랑스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이상빈의 《나의 프랑스》 서평 시작)나 ‘인간의 성숙은 경계를 아는 것이다.’(양서경의 《DMZ 15년의 기억들》 서평 시작)과 같이 내 느낌부터 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서서히 책과 맞물려 가면서 전체 문장으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글의 시작은 어려워지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만든다. 하지만 초반은 우선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글을 써서 없애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자꾸 쓰다보면 글을 자연스럽게 써진다. 부자가 행복한 돈타령 하는 게 아니다. 일단 글을 쓰면 읽어보게 된다. 필자는 유독 퇴고를 싫어한다. 어지간한 칼럼을 써서 한번도 퇴고하지 않고, 넘기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요즘 유료 원고는 가능하면 맞춤법 확인 사이트에 넣어서 돌린 후 보낸다. 최소한의 오자를 걸러야만 돈 주는 사람이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원고료를 준다면 더 심하게 퇴고를 할 수 밖에 없다. 필자처럼 잡문을 쓰는 사람들은 그럴 일이 없지만, 헤밍웨이 등 고전 작가들은 물론이고 당대 작가들도 퇴고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글을 수정하고, 완전체를 만들어가 간다. 특히 소설 같은 경우 특히 심할 것이다. 하지만 짧은 글이라면 그 정도를 퇴고하지 않아도 된다. 어떻든 다시 내 글을 읽는 과정에서 틀도 볼 수 있고, 오자나 비문도 잡아내서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가면 글 실력은 차츰 늘어난다.


어떤 이들은 맞춤법이 틀릴까봐 글을 못 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나 역시 맞춤법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 다만 요즘은 다양한 맞춤법 교정 프로그램도 나와서 망신을 당할 정도는 막아준다. 이런 거 생각하면 죽어도 글을 쓸 수 없다.


또 요즘은 글쓰기를 곳을 가르치는 곳도 많다. 마을복지센터나 구청, 도서관 등에서는 많은 전문 강사들이 나와서 글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요즘은 비대면 강좌도 많다. 포탈에서 ‘글쓰기 강의’로 검색하면 다양한 글쓰기 강의 콘텐츠가 있다. 유료가 싫다면 유튜브에서 글쓰기 강의로 하면 역시 수많은 강의들이 나온다. 유시민 작가의 서울대 특강, 강원국 작가나 백승권 작가로 좋은 강의 자료가 있다. 필자가 진행하는 백승권 작가와 하는 공직자 글쓰기 자료도 있는데, 좋은 강의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두려움 중 하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필자도 대학을 다닐 때 무엇을 쓸까가 가장 고민이었다. 심지어는 부산역 앞 노숙자와 술을 먹으면서 나는 무엇을 써야 할까요를 물은 적도 있다. 답은 간단하다. 니 이야기를 쓰면 된다다. 난 절대 남이 돼서 글을 쓸 수 없다. 결국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명작 가운데 특정한 SF 소설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기 이야가를 글로 녹여낸 것이다. SF 소설이라 할지라도 소재를 우주나 외계로 했을 뿐, 결국 인간이 가진 욕망, 사랑, 질투 등 감정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좋은 글이다. 경험과 감정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날 경춘선 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도 좋다. 그 공간에서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도 태어났다. 김유정역에 내리면, 김유정 작가의 역사를 만날 수 있고, 실레마을을 조금 더 올라가면 전상국 작가도 만날 수 있다. 김유정 문학촌의 촌장이 이순원 작가인데, 그를 찾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멋진 글을 써보겠다고 자신에게서 벗어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자신에서 비롯하는 게 낫다.


요즘 <불편한 편의점>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김호연 작가는 대학시절에 같이 소설 창작이나 시창작론을 들었다. 김작가도 처음에는 자신이 만나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망원동 브라더스>를 써서 관심을 끌었다. 이후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파우스터>나 <고스트라이터즈> 같이 약간 개성있는 소설을 썼다. 최근 주목받는 <불편한 편의점>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우리 동기가 편의점을 하는데, 그와 어울리면서 영감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사람들은 아주 먼 이야기를 찾아서 읽는 것을 두려워 한다. 나랑 비슷한 이야기 중에서 의미있고, 감당있는 것을 찾는 게 일반적인 생리다.

불편한편의점.jpg 후배인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도 주변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이 호기심있을 소재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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