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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Nov 03. 2021

<判讀用書> 죽음으로 운명지어진 삶이 아름답다

<생활-8> 웰 다잉으로 가는 길

나는 조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둘째인 누나가 태어날 즈음인 1963년 경에 두 분이 돌아가셨으니, 다섯째 손자인 나를 보시고 싶은 마음이 없으셨던 게다. 외 조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서너살인 내가 너무 서럽게 상여를 붙잡아 효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기억에 없지만 난 연기에 재능이 있거나,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적 동네에서는 환갑잔치를 하면 장수한다고 할 정도로 평균 수명이 짧았다. 그래서 죽음은 모두에게 아주 가까운 것으로 보였다.  

    

전남 영광군, 군 소재지서 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우리 마을은 20여호 되는 마을이었지만 80년대 중반에 대부분이 이촌향도를 선택했다. 그런데는 아버지는 창녕조씨 집성촌 동네의 종손이라 결국 고향을 떠나지 못했다. 영광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증조부 시절에 가세가 기울어 더 공부를 못한 아버지는 이장이나 영농회장을 하면서 마을 일과 집안 일을 돌봤다. 때문에 아버지는 남겨진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모든 것을 챙기셨다. 집안 어르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어머니도 산 동네 어른은 물론이고 죽은 조상들에게도 한 점 아쉬움없이 모셨다. 그러다 동네 어른이 돌아가시면 아버지는 스스로 임종을 지키셨고, 상례를 주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동네 분들이 돌아가시면 모두 매장을 선택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내가 방위생활을 하던 1990년 즈음부터 아버지의 건강은 술병으로 위태하셨고, 2001년 음력 3월 보름에 작고하셨다. 1937년생이니, 우리나이로 65살이셨다. 우리 부부가 중국에서 생활하던 때인데, 무슨 일인지, 귀국해 서울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 위독하다는 소식이 와서 시골에 내려갔다.      


 우리가 시골에 도착했을 때, 영광종합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던 아버지는 사실상 돌아가신 상태였다. 인공호흡기에 의탁해 숨을 쉬셨는데, 의사가 사실상 돌아가신 것으로 판단해 엠부에 의지해 고향집에 돌아왔다. 고향집 안방에서 의사가 엠부를 때자, 바로 호흡을 멈추셨다. 내게는 사실상 첫 죽음의 대면이었다. 자식이 부모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면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만져야 한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어 아버지의 얼굴을 더듬어 잊지 않으려 했다. 그래선지 지금도 아버지의 얼굴은 선하게 기억난다. 종가집의 종손이니 집에서 상례를 치렀다. 사방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다. 그래서 조문 온 친구들은 그 꽃으로 우리 마을을 기억했다. 입관한 채 안방에 있던 아버지의 시신은 엎드린 자식들의 등을 넘어 상여로 옮겨졌다. 당신이 주재하던 상여길의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상여라는 것이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몇 번의 죽음을 봤다. 죽음에 관한 에세이스트 소노 아야코의 책들도 자연스럽게 읽혔다. 나희덕 시인의 <그곳이 멀지 않다>를 비롯해 죽음에 관한 시들도 낯설지 않다. 그냥 가끔씩 나도 ‘그곳이 멀지 않다’를 혼자 읊조리곤 한다.      

상하이 루쉰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국의 퇴직자들. 퇴직이 빠른 만큼 죽음까지의 시간은 길다. 중국도 웰다잉은 가장 큰 사회적 과제다.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어떤 이들은 자율적으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내 혈육 중에도 그런 이도 생겼다. 기독교도가 아님에도 나는 그런 선택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마음도 접었다. 그게 죄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쪽 말만을 굳이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데, 그런 어려운 선택을 한 사람은 그들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인공심장이 나온 후에 죽지 못하는 인간에 관한 책을 읽는데, 너무 암담했다.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였다. 인공심장이 나오면 인간은 지금보다는 훨씬 긴 수명을 가질 게 확실하다. 심장은 인체의 엔진인데, 엔진이 바뀐 기계가 어떻게 바뀐 지 아는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엔진이 새로워지면 배관에 있는 녹들도 씻어낸다. 물론 심장이 바뀌면 혈관의 혈전들도 사라질 것이다. 혈관 속 노폐물을 씻어내는 갖가지 시술도 생길 것이다. 그럼 회춘은 당연한 일이다. 이후 혹시라도 위태한 부분이 있으면 교체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수명이 200살, 300살로 가는 시기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 책에서 인공심장의 교체는 선택사항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죽음을 선택해 떠나버렸고, 후손들 중에도 인공심장을 달지 않아서 운명한 이들이 있었다. 족보는 뒤죽박죽 꼬였다. 이제는 죽음 조차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그때가 되면 죽음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시대다.      


물론 나는 그런 시대를 원하지 않는다. 죽음이 없는 인생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으로도 보인다. 그럴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앞서 말한 소노 아야코다. 1931년생인 이분은 인생 전주기에 대한 글을 썼지만 내게 인상적인 것은 늙음이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후회 없는 삶, 아름다운 나이듦>이나 <죽음이 삶에게> 등을 통해 죽음의 미학을 많이 펼쳐놓은 분이다.      


그녀는 말한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가능성이 없다면 인생은 지금처럼 매력적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동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인간이 죽지 않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을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으로 운명 지어진 생에 감사해야 합니다.”(‘죽음이 삶에게’ 안에서)     

“사망선고에 낙심한 나머지 두 손 놓고 멍하니 지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자신의 손으로 끝내야 하는 일들을 정리하려고 마음이 바빠진다. 죽음의 날이 정해짐으로써 남은 남들이 더 소중해지는 셈이다. 하루하루가 보람 있고, 각별해진다.”(‘후회 없는 삶, 아름다운 나이듦’ 중에서)     


그렇다.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인생이라는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끝나지 않은 연극, 끝아지 않은 음악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것을 듣고 싶은 이도, 보고 싶은 이도 없을 것이다.      

잘 죽는 ‘웰다잉’(Well-Dying)은 이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내가 근무했던 춘천시가 생각하는 복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마을 단위로 서로를 돌보는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 가장 늦게 요양시설에 가는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죽음은 이제 공포가 됐다. 고독사 등에서 자유롭지 않고, 죽음에 어떤 성스러움도 없어진 지 오래다. 충분한 자신이 있는 이들은 고급 요양원에서 살 수 있지만,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위태한 노년시간을 보낸다. 도시에서 위태위태하게 폐지를 줍은 노인들의 한달 수익은 2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기사도 있다. 빈궁한 생활 속에서 병원과 약에 의존하다가, 마지막에 요양원에 가는 방식으로 소멸해 간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죽음을 기다리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문제는 그 시간이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것이다. 가끔 찾아오는 가족들이 위안이 될 수 있지만,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옆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이 어떤 의미일 것인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고귀한 인간으로 존재 보다는 수명과 돈이 연결되는 또 다른 산업의 한 부품일 뿐이다.      


 농촌에서의 삶은 비슷하지만 나은 면도 있다. ‘창녕조씨’들의 집성촌인 고향 마을에는 지금 6분 정도의 집안 어른들이 계신다. 연세가 83살이지만, 비교적 정정한 어머니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대부분 병원에 다닌다. 그래도 요양원처럼 답답해할 필요는 없다. 일단 거동을 해야 하니, 최대한으로 자신의 역량을 쓴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원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고향 집에서 임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고향이고, 집성촌이기 때문에 서로를 돌보는 문화가 있어서 그나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고향 집보다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간 확고하게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흔 정도는 되야 할 것 같다. 나는 마흔 즈음에 나중에 실버 잡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적이 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신문 등 매체를 만드는 일이니,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 굳이 매체가 아니라, 유튜브나 칼럼을 통해서 노년의 문제를 고민하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인들의 생활, 재테크, 의료 등은 물론이고 섹스나 경제활동도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고향에서 같이 보낼 친구들은 많지 않다. 이미 고향을 떠난 지 수십년이 지났고, 고향에 가족도 없는 친구들은 굳이 의료 환경도 좋지 않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내가 낙향할 20년 정도 후라면 달라질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도 개인의 건강 상태는 실시간 체크할 수 있고, 자율주행차가 있기 때문에 운전을 하지 못해도, 시골 생활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같이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 속에 있으면 사계절을 주기로 수많은 생명들이 명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도 생멸하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어떻게 잘 죽을 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처럼 남은 정을 떼기 위해 한두달 앓다가 죽는 것이 좋다는 미덕을 만들 필요도 없다.      


 젊은 시절 대학병원에서 간병사를 하신 장모님은 연세를 드신 후에 나중에 절대 당신을 수술하지 말하는 당부를 자식들에게 했다. 그런데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의식이 남아 계셔서 수술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 근처에 사시면서 그렇게 당부했던 것을 가족들이 지키지 못했다. 반면에 장인 어른은 장모님의 확신이 있어서 연명을 선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하실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의 처치에 대해서 환자 가족이라도 무조건 판단할 수는 없었다. 장모님은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하고, 이십여일 만에 돌아가셨다. 죄스러움도 있었지만, 부족한 가족들을 용서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죽음은 어떤 사람의 온전한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웰다잉은 단계별로 많은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 관련 협회도 생기고, <누구나 죽음은 처음입니다>라는 웰다잉에 관한 책도 있다.      

그럼 이 시대 웰다잉은 무엇일까. 우선 웰다잉은 죽음 자체에 요란을 떨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작은 장례식이다. 핵가족화 되는 시기에는 결국 자의든타의든 작은 장례식이 보편화될 수 밖에 없다. 필자 역시 지인들의 부모님 상만 챙기는 방식으로 축소시켰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당해도 그 정도만 요청할 것이다. 절차가 간소하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치르는 작은 장례식에는 진심으로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고, 기억해 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간소화해 장례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죽음은 언제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그런데 그 죽음을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것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장기기증 서약 등 만약에 찾아올 수 있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미리 해두었다. 또 다른 하나는 연명치료 등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명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보건소 등에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등록하면 된다. 이것은 다시 살아나 회복될 가능성이 의학적으로 없다 판단되는 상황에서, 생명만을 유지하는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고 스스로 동의하는 것이다. 의식이 없어지면 내 생각과 무관하게 가족들이 아쉬운 마음에 연명치료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처벌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16년 2월에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져, 연명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유독 추웠던 2016년 1월에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우리 집은 장모님 댁과 가까워 집 정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우리 몫이 많았다. 돌아가신 장모님 댁의 식물을 비롯해 냉장고를 정리하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특히 냉동실의 물건 등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 오마이뉴스에 ‘돌아가신 장모님의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집과 처갓집에서 작고하신 3분 모두 아쉬움도 있지만 웰다잉에 가깝게 돌아가셨다. 반면에 평균수명으로 봤을 때, 30년 가량 남은 내 죽음까지의 시간은 쉬워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것처럼 휴머노이드와의 싸움을 하거나, 핵전쟁 같은 불상사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시간이 온다면 웰다잉은 고사하고, 노인 전사가 되야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잘 죽는 문제는 이제 내 머리에서 가장 강하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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