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 2018>
영화 <일일시호일>을 마지막으로 유럽으로 떠났다. 이후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나를 실험하는 시간에 즐겁게 뛰어들었다. 영화 뒤에 숨은 내가 과거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현재에 발을 딛는다. 때때로 그 사이를 방문하면서.
4개월간 내면을 끓이고 나니, 조그마한 용기가 남았다. 아직도 나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해 무너지는 나지만, 그런 나도 받아들인다.
<일일시호일:매일매일 좋은 날> 문자 뜻처럼, 하루하루 '자기표현'을 쌓으며 타인에 꽂아놓았던 시선을 내 안에 두니, 조금 더 잦게 나를 받아들이고, 좋은 날을 맞이한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아픈 글을 훔치며 위로받아왔다. 그 글이 얼마나 사랑받는 글인지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나도 내 이야기를 쓰면 된다.' 용기를 얻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두려운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면, 그런 마음이면 좋겠다.
수용; 언저리에서
14_ 내면을 끓이며
영화 <일일시호일, 2018>
차(茶) 같이 여운이 남았다. 천천히 담백하게 우려, 입 안에 오래 머금는 차. 영화를 본 뒤 바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 혹은 원하는 일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를 곱씹을수록 쉽사리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는 생각을 고쳤다. 이 영화는 바로 나 같은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으니까.
주체(主體)
주인공이자 원작 에세이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다도(茶道)를 통해 자신만의 삶을 찾았다. 처음에 노리코는 자신을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노력형이라 소개하며 탐탁지 않아 했다. 스무 살, 평생을 걸만한 일을 찾았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 오리무중이었던 반면 사촌 미츠코는 똑 부러지게 원하는 걸 알고 실천하는 행동파였다.
그런 미츠코의 제안에 떠밀려 시작하게 된 다도 수업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감이 없던 그녀가 가족 외식 대신 다실(茶室)에 갔다. 취업, 결혼, 빠르게 앞으로만 가버린 미츠코 없는 다실에서 노리코는 차에 점점 더 빠져들어 20년 넘게 다도를 지속했다. 자신의 선택이 쌓은 행위는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간(時間)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는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영화 초반 노리코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린 노리코는 디즈니보다 재미없는 흑백 영화라고 기억했지만, 성인이 되고 다시 본 그 영화는 그녀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는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다도에 있어 다과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족자(簇子)이다. 노리코가 [日日是好日:매일매일 좋은 날] 의미를 깨닫는 건 십여 년이 흐른 뒤였다. [不苦者有知:걱정이라 여기지 않는 자는 지혜롭다]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바라볼 혜안의 근간은 시간이었다.
변화(變化)
노리코는 여름내 겨우 손에 익숙해진 다도를 겨울에는 겨울 방식으로 다시 배워야 했다. 한 시절에 안주하지 말고 오감을 열어 찾아오는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듯.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날은 24절기에 따라 흐르고, 그녀는 절기의 미동을 느낀다. 이윽고 온도에 따라 찻잔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다르다는 것, 가을비와 여름 소낙비의 울림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즐거움을 깨우친다. 그저 큰 흐름에 몸을 맡기고, 지나가는 나날들에 감탄하는 법을.
대한(大寒)
'나는 솜씨가 부족하고 센스가 없다. 그래서 여기서도 설 곳이 없다.' 겨우 발 디딘 곳도 내가 설 자리가 아니라고 느끼는 시기, 믿었던 약혼자와 아버지와 실연하는 날이 노리코에게도 온다. 살을 에는 아픔, 하지만 제일 추울 때 피는 꽃이 있다. 추위의 절정기인 1월에 가장 먼저 피어 풍년이 든다고 해 풍년화라 불린다. 대한이 오면 곧 입춘(立春)이다. 눈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때를 기다리는 풍년화처럼, 노리코는 다도와 함께 겨울을 겪는다.
지금을 음미하면, 日日是好日
정신이 들자 나는 그저 묵묵히 진한 차를 개고 있었다. 차 한 잔을 개는 일에만 내 마음 전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새 초조함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온전히 ‘여기’에 머물고 있었다. -⟪매일매일 좋은 날⟫ 본문 중에서
다실에서는 각 물건이 요긴하게 쓰인다. 다도구를 닦는 천은 성별과 다도 유파에 따라 색이 다르고, 차를 담는 그릇인 다완은 계절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개의 해엔 개가 그려진 그릇을 쓴다. 12년에 한 번 쓰이고 남은 시간은 먼지만 쌓일 텐데, 내 시선으로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느낄 뿐이다.
그런데 다인(茶人)은 이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지고, 그 순간을 소중하게 대한다. 얼마나 자주 쓰이고 값어치를 하는지에는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마치 너도 그러하다고 이야기하는 듯이. 다도는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살라고 전한다. 자신의 속도로 오늘 이 순간에 온 마음을 기울여보라고 말이다.
영화 마지막, 다케다 선생은 24년을 다인으로 살아온 노리코와 그녀가 선망했던 유키노에게 차를 가르칠 것을 권한다. 그러고 나서 카메라는 조용히 노리코의 표정을 담는다. 이때 노리코의 표정이 인상 깊은 이유는 그녀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쓸 용기를 가지지 못한 내게 영화는 괜찮다고 말했다. 아무리 찾으려 애써도 잘 모르는 것이 있다고. 그런 것은 세월이 흘러 조금씩 조금씩 깨닫게 될 거라고, 그저 지금의 너대로 하면 된다고.
조금의 고민 뒤 원작 수필을 구매했다. 다음 주부터 긴 여행을 떠나는데, 이 책과 함께하게 되었다. 노리코가 깨달은 '일일시호일'이 내포한 의미를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내 답을 만들고 싶다. 오랜 시간 푹푹 끓여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