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레이 베이, 2018>
아들의 죽음을 마주한 여인의 반응이 낯설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는 눈물 한 방울 없다가, 뒤늦게 감정을 분출하고는 오랜 아픔을 수용했다. 나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각자의 상처 너머 수용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살아내야 하는 것. 그것이 영화가 그리는 현실이었다. 난 아직 수용의 경계선 언저리에 서 있다.
수용; 언저리에서
12_ 수용의 하나레이 베이
영화 <하나레이 베이, 2018>
영화는 자연이 삼켜버린 아들을 마주해 나가는 사치의 시선을 그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도쿄 기담집⟫에 속한 다섯 편의 기담 중 하나로 여기서 '기담'이란 일상에서 일어남 직한 기이한 이야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레이 만은 시각과 청각 그리고 내면을 자극한다. 하얀 모래사장 위를 넘나드는 푸른 바다와 짙은 숲. 대자연을 담은 풍경화의 뜯긴 종이 같이 드러난 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었다. 상실로 얼어붙은 주인공 사치의 심리는 표정과 행동, 교차하는 회상 장면을 통해 전해진다.
상실의 현실
사치에게 상실은 곧 현실이다. 꿈을 접고 결혼했지만, 엉망진창인 결혼생활이었다. 이내 마약을 일삼던 남편은 다른 여자 품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꿈과 죽은 남편이 투사된 아들이 옆에 남는다. 그런데 어느날 상어에게 물려 죽어버렸다. 열아홉 살 된 청년이 상어에게 한쪽 다리를 물려 죽는 일은 그곳에서도 이례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는 누군가를 원망할 수 없는 죽음, 사치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 현실임을 의미했다. '섬을 원망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경비원의 간구처럼,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부재한 자연에 의한 죽음이다. 탓할 수 없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상실의 감정이 쉬이 분출되지도 정리되지도 못한다.
애증(愛憎)
사치는 아들이 싫었지만,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세상을 떠난 그와 화해하는 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폭력을 일삼고 여색을 탐하던 마약쟁이 남편의 죽음에 이어 아들까지 잃은 그녀. 처음에는 담담한 듯 보였고 목놓아 우는 장면 같은 건 없었다. 애증의 대상이 죽어버렸을 때의 반응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상실 뒤 따라오는 반응이라는 건 애증의 양면성보다 다면적이다.
다시 그곳으로
사치는 매년 아들이 죽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간다. 그녀만의 애도 방식은 참담하리만치 적막하다. 그저 같은 장소에서 책을 읽고, 바에서 피아노를 친다. 그녀의 일상은 아들이 죽기 이전에서 멈춰있듯이. 한 세월 동안 하나레이 베이의 누군가는 죽고 관광객들은 오가지만 그녀의 시간만은 멈춰있었다.
아들의 장례를 마친 직후, 집에 돌아와 유품을 모조리 상자에 넣어 닫아버리는 그녀는 회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처리되지 않은 감정은 계속해서 그녀를 하나레이 만으로 찾아가게 했다. 그리고 10년 뒤 어느 날,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서퍼 청년 둘로부터 외다리 서퍼의 존재를 듣게 된다.
어쩐 일인지 외다리 서퍼는 두 청년에게만 나타날 뿐, 온 해안가를 휘젓고 다니는 사치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치는 그 소문을 붙잡고 아들을 찾아 헤맨다. 관객만이 멀리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외다리 서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비로소 절규한다. 변하지 않는 사실처럼 우뚝 서 있는 나무 기둥을 밀며 악을 쓰고, 숙박 중인 방을 정신없이 어지럽힌다. 10년 동안 거절했던 아들의 핸드프린팅을 이제야 손에 쥐고 '보고 싶다' 울부짖는다. 복잡하고 형용할 수 없었던 감정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그녀는 치유되기 시작한다.
상실을 품으로
그날 이후 그녀는 도쿄로 돌아온다. 상자 안 아들의 가방 속에서 미니 카세트를 꺼낸다. 이 카세트는 죽은 남편의 유품이었기에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다. 아들 그리고 죽은 남편을 향한 감정과 화해하는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바다에서 뒤돌아 환하게 웃는 사치의 모습이다. 어느 때보다도 밝은 얼굴을 통해 드디어 외다리 서퍼(아들)를 만났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녀가 맞이한 상실을 품속으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어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을 만난다. 사치는 더는 하나레이 베이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향한 사치의 절제된 반응이 비정상적일까? 원작과 영화는 아픔을 수용하는 것은 누구나 어렵다고 전하는 듯하다. 우리들의 크고 작은 상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원망과 고통이 뒤섞인 현실을 마주해 수용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여야 한다.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자격이 있든 없든, 있는 그대로.
- ⟪도쿄 기담집⟫, <하나레이 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