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된 나를 찾는 여행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가족의 민낯을 색색으로 들춘다. 그중에서도 <아무도 모른다>는 큰 충격이다.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버려진 아이들이 물도 전기도 끊긴 와중에 컵라면 그릇들 한가득 정원을 가꾸더라.
사람은 무언가를 가꿀 때 빛이 난다. 누군가는 커리어 또 누군가는 자식을, 동식물 등 여러 모습이지만, 지금 내겐 내면을 가꾸는 이가 제일이다.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나를 분실한 게. 글, 그림을 통해 나를 되찾고자 하는 곳들이
'Lost & Found'(분실물 센터)처럼 느껴졌다.
졸업 후 항공사 지상직원으로 일 했었다. 공항 근무자였고 때때로 비행기나 카운터에서 발견된 유실물을 '분실물 센터'에 맡겨, 승객에게 연락이 오면 그곳에서 찾아가라 안내했다. 외국 항공사였어서 모든 직원이 'Lost & Found'라는 표현을 주로 쓰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유실물 관리소', '분실물 센터'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비해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표현은 'Lost & Found'라 심플했다.
직원 혜택으로 해외에 자주 드나들 수 있었다. 닿을 수 있는 노선을 환승의 환승을 거듭해 다닌 덕분에 여러 곳에서 재미난 경험이 많았다. 그런데 여행 이후 이를 치워버리듯, 난 눈 앞에 닥친 삶에만 치중했다. 남은 거라곤 초과된 용량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쓰레기처럼 남은 사진뿐이다. 기억은 휘발되고 빛나던 순간들이 바래져 있었다. 나란 사람은 나를 참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차곡차곡 기록해두었다면 어땠을까. 정리되지 않아 잊힌 과거가 아쉽고 한탄스러웠다.
나는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난 나머지 정리병(이전에 비해) 같은 게 생겨서, 요즘은 뭐든지 정리하려고 든다. 클립과 집게, 보관 파일이 늘었다. 지금 와서 사진을 어딘가에 올리는 건 의미가 없어 웹하드 용량을 추가하고 각 폴더에 나눠만 놓았다. 하지만 사진보다 진하게 남은 기억들은 지금이라도 기록하려 한다.
'나를 찾는 여행'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이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들의 정원을 가꾼 것처럼, 이제 나도 내면의 정원을 가꾸고 싶다. 물을 주고 때에 맞게 가지도 치면서. 그러다 보면 언젠가 'Lost & Found'에서 '엇 여기 있네요' 하고 분실된 나를 건네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평생 기억하고 싶은 기억과 생각, 그리고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행을 하려 한다. 이 모든 건 '정리'의 일환일 것이다. 덜어낼 건 덜어내고, 선명한 나를 띠는 기억은 기록해 남기고.
과거에 항공, 교육 일만 해왔던 나는 누군가를 케어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승객의 여정을 도왔고, 학생들에겐 자신 고유의 장점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이젠 내게 그렇게 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