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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Nov 29. 2018

바운더리 세울게요

타인과 나 사이 선


단 한 사람도 똑같지 않듯 각자의 한계선이 다르다. 상대와 나를 가르는 경계선이 모여 이루는 형태가 나 자신이 된다. 그런데 이 형태가 없거나, 모호하다면 어떨까?


타인과 나 사이 경계, 즉 바운더리가 없는 사람은 마음의 병을 얻기 마련이다. 내가 할 수 있고 없는 일을 상대방에게 알릴 줄 알고, 자기 영역 밖은 신경 끌 줄 아는 것.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나 바운더리가 희미한 사람은 자기 한계선을 분명하게 하지 못할뿐더러, 바운더리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바운더리가 없었다. 필연적으로 관계 속 내 자리는 대부분 고통이었다. 상대는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경계를 긋고 허물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과한 책임과 상대의 무책임 사이에서, 공격적인 언행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바운더리를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이 선을 넘을 때, 나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그 순간에 고통을 허용하게 된다.


그런 내게 남은  바운더리가 있는 이들을 위해 애쓰고 두려워하기를 지겹게 반복하는 일이었다. 상대를 침범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과는 별개로 누군가는  경계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고, 때로는 짓밟았다.  바운더리를 스스로 확고하게 세우지 못한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는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를 알아서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바운더리를 세우지 않다가 세우면, ‘갑자기  이러지?’하는 반응 뿐이다. 내가 상대의 바운더리를 지켜주는 만큼 저절로 배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운더리가 명확한 사람은 일에 대해서도 쉽게 스스로에 맞게 재단한 결정을 내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그들의 온화한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나는 뭐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지옥의 레퍼토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관계로 소진되었고 손 뻗을 힘도 바닥까지 닳아버렸다.






그래서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에 있어 의식주만큼이나 필수 불가결한데, 학습하지 못하고 세상에 내던져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러했고, 오히려 바운더리를 세우지 않는 법을 지독히 익혔다.


바운더리 문제로 관계가 힘들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을 지키는 경계선을 세우는 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바운더리는 곧 자아존중감, 자존감과 직결된다. 나라는 정체성이 올바로 세워지지 못했다면, 주변을 생각하는 것은 그다음이 되는 것이 맞다.


내가 바운더리를 단단히 세워놓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 점을 이용해 자신의 유익만을 우선시한다. 심지어는 권리인양 행세하는걸 무수히도 겪었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급하고 싶지 않다. 바운더리가 결여됨으로 겪어야 했던 경험의 실체를 알았고, 이 곳까지 온 것만으로도 정말 잘한 것이니까. 그렇게 나를, 나와 같은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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