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비웃다
불안과 삶에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요즘, <빅터 프랭클 저,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있다. 프로이트, 아들러의 뒤를 잇는 로고 테라피(logotheraphy; 의미요법)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이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저서에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립한 로고 테라피 개념과 더불어, 이를 적용할 몇 신경증의 개념과 사례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나는 로고 테라피라는 개념 그 자체보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삶의 문제에서 작용하는 것인지에 더 관심이 갔다. 나는 그 일부인 불안과 강박증의 원인으로 볼 수 있는 '예기 불안' 그리고 로고 테라피 치료 기법인 '역설 의도'에 대해 기록하고자 한다.
‘예기불안’
이 증상의 특징은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면 바로 그 증상이 정말로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커다란 방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제로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훨씬 더 얼굴이 빨개지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증세가 공포를 낳고, 그 공포가 다시 증세를 유발하고, 이번에는 반대로 그 증세가 공포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생각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강박증 환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우는 것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강박증에 더욱 힘을 실어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역설 의도’
이와는 반대로 환자가 강박증과 맞서 싸우기를 중단하고 대신에 아주 반어적인 방식 - 역설 의도와 같은 -으로 그것을 비웃어 주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증세가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에는 없어지고 만다. 이런 증상이 실존적 공허에 의한 것이 아닌 다행스러운 경우에는 환자가 자신의 신경증적 공포를 비웃는 데에서 더 나아가 나중에는 아예 그것을 무시하게 된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역설 의도' 기법에 관한 실례 중 하나를 요악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땀 흘리는 것에 공포증을 가진 한 남자는 땀을 쏟을 것이라 불안할 때마다, 예기불안이 일어 실제로 땀을 많이 흘렸다. 프랭클은 사람들 앞에서 위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 '내가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는지 보여 주겠다'는 생각을 하라고 충고했다.
일주일 후 다시 찾아온 환자가 이야기하길, '전에는 땀을 한 바가지밖에 안 흘렸지만, 이제는 적어도 열 바가지는 흘리게 될걸.'이라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공포증으로 4년을 고생하던 그는 단 일주일 만에 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한다.
빅터 프랭클은 이 역설 의도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리두기 능력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자신과 자신의 병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활용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농담을 할 수 있다. 즉, 불안을 비웃을 수 있게 된다.
생각해보면 역설 의도를 종종 실천해왔던 것 같다. 도망칠 수 없을 땐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 망치자, 난 원래 이런 인간이니 얼마나 더 망칠 수 있나 한번 보자'와 같은 마음이었는데, 그 속에 회피가 있었다. 그만두겠다고 잠정적으로 맘먹을 때만 가능했다. 초연한 척해봐도, 현실을 마주하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상처와 나, 실수와 나 그리고 관계 사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한 발짝 멀리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불안이 나를 쥐고 흔들 수 없을 것이다. 그 적당함을 익힌다는 건 평생에 걸친 실험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그저 책 한 권 붙잡고, ‘내일은 더 망쳐보겠다’고 불안을 비웃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