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를 알게 된 건 2013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뮤지엄에서 상설전을 볼 때였다. 공원 속 멋스럽고 투박하게 위치한 드 영 뮤지엄 안에서, 명화들 사이 섬세하고 예민한 소묘 작품이 눈에 띄었다. (Celia 8365 Melose Ave, Hollywood, 1979)
15점 안팎의 소묘작을 지나 위트 있는 컬러 배치와 입체적 표현의 작품은 마치 미니어처 피카소 작품을 연상시켰고 작가의 이름에서 또 한 번 그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Celia with Guest, July 1986, 1986)
팝 아티스트, 무대연출가, 사진가, 판화가, 삽화가 등은 데이비드 호크니를 대표하는 수많은 수식어들이고 앞으로 추가될 수식어들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영국의 요크셔주 브래드퍼드에서 출생한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 60년대부터 대중에게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이후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치 진화하듯 새로운 작업들을 해왔다.
로스앤젤레스
나는 그를 세상에 알리게 한 60년대 로스앤젤레스 수영장 작품 시리즈들을 정말 좋아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빛이 비치는 자연의 광활함, 그 구석구석 보물 같이 박힌 집들, 기후의 색 등이 호크니의 작품과 닮았다. 호크니는 1963년 Royal College of Art 졸업 후 1년 뒤 처음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는데, 이후 1976년 캘리포니아의 평온하고 관능적인 분위기와 삶에 매료되어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나 또한 캘리포니아의 정취를 사랑해서일까 그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묻어나는 캘리포니아 특히 로스앤젤레스를 향한 애정이 그와 내가 같은 것을 나누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머물며 모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하지도 호화롭지도 않은 일상의 일부인 수영장을 포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점은 일 년 내내 싸늘한 날씨와 분위기를 풍기는 영국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또한, 당시 동성애가 금지되었던 영국에서와 달리 로스앤젤레스는 그가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던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이후부터 그의 작업은 점점 더 자유로이 확장되어갔다.
그의 첫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 시리즈 중 하나인 <A bigger Splash, 1967>는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 수면 위 물이 튀고 있는 멈춰진 장면만이 그려져 있다. 당시 그는 끊임없이 변하는 물의 표면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재현해내는 데에 몰두했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의 호크니의 작품은 선명한 색과 밝은 패턴, 미세한 광이 느껴지는 아크릴 물감, 로스앤젤레스를 상징하는 야자수, 고요하면서 퇴폐적이기까지 한 분위기 등을 아름답게 드러냈다.
유연함
2013년 처음 접한 호크니의 소묘 작품 그리고 전혀 다른 풍의 작은 그래픽 작업을 시작으로 나는 호크니의 도전 정신을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회권(두루마기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마치 관객의 시선에 따라 그림이 움직이듯 표현한 '움직이는 초점' 작업들, 사진에서부터 추상, 실험적인 판화, iPad 디지털 드로잉 작업들…. 그의 작업은 끊임없이 시대에 발맞췄으며 어떠한 아집도 없었다. 그가 가진 대상에 대한 특유의 애정 어린 시선과 그 유연함은 작품 속 그의 이야기에 생생히 동참하게 하는 적극성을 순식간에 끌어내어, 우리를 작품 속으로 이끈다. 80세가 넘은 그가 아직도 활발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의 열정이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설렌다. 2013년 한국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대형 작품 한 점이 어마어마한 부담을 감수하고 전시되었을 때 그 한 점을 보기 위해 발걸음 한 많은 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2019년 3월 22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아시아 지역 첫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서울시립미술관, 영국 테이트 미술관 주최 <데이비드 호크니> 전
호크니의 1950년대 초부터 2017년까지의 회화, 드로잉, 판화 133점을 선보이고, 작가의 시기별 작품 특성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영국 테이트 미술관이 소장한 다수의 컬렉션과 그 밖의 해외 소장품들을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호크니의 내레이션과 함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설치 영상이 굉장히 좋았다.
특별히 이번에 호크니가 새롭게 내보인 'David Hockney: A Bigger Book'이 전시되어 있는데 책 속은 볼 수 없었고 대신 호크니의 설명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영상에서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자신은 과거를 그다지 회상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사람인데 이 책을 만들고 꽤나 놀라웠다고, '자신이 흥미로운 작업들을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그는 내게 정말이지 이상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Bigger and Bigger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호크니,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호크니가 인정했던 자신의 관찰력?(그는 eyeballing이라고 칭했다) 변화무쌍한 매체에 반응하는 적응력과 실험정신? 한 분야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계속적으로 확장시켜나가는 도전력? KFC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귀여운 외모와 강아지를 사랑하는 그의 따뜻한 면모가 한몫을 했을까?
Bigger Trees, Bigger Splash, Bigger Grand Canyon, Bigger Book…. 그의 작품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Bigger라는 표현 이것은 호크니 자신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공간을 그리던 호크니는 이제 시간을 그린다. 픽셀처럼 나뉜 캔버스 하나하나가 모여 호크니의 작품 전체를 이루듯, 그가 살아온 공간을 아우르던 그만의 시선이 모여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인생을 느낄 수 있음에 이번 전시는 경이로웠다. 마지막으로 내가 눈을 뗄 수 없어 몇 번이고 넋 놓고 바라보았던 작품 사진을 아래 첨부한다. 실제로 그랜드 캐넌 앞에 서있을 때의 그 장엄함이 그림을 보는 순간 압도적으로 재현됐다. 눈 앞에서 보면서도 눈에서 기억을 잃을까 아쉽고 아쉬웠던 데이비드 호크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