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0
그때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 어귀에서 달고나 기계를 운영하던 가게의 정체가 궁금할 때가 있다. 입구 쪽 진열대 위에 펼쳐져 있던 물건들은 무엇이었는지, 가게 내부는 어떤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지. 뒤늦게 기억 속 ‘나’에게 묻는다 해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시절 나에게는 그저 ‘달고나 기계’가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달고나 기계.
돌이켜 보면 먼지가 수북하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지금의 위생 관념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시절 나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달고나가 반짝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100원짜리 동전 2개가 호주머니에서 짤랑거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달고나 기계는 우리 집 현관에서 나와 곧장 왼쪽으로 걷다가 사거리 모퉁이를 크게 돌면 보이는 가게 앞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가게 왼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어른들 눈에는 그저 녹슨 고철 덩어리였겠지만, 우리에게는 바삭한 달콤함뿐만 아니라 직접 만드는 재미까지 선사하는 근사한 기계였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가게 앞 골목은 대체로 한산해서, 늘 여유롭게 달고나 기계를 사수할 수 있었다.
달고나 기계 앞에는 작은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검게 그을린 국자가 물통에 잠겨있었다. 기계 안을 들여다보면 국자를 올려놓는 열선이 보인다. 열선은 꼭 뱅글뱅글 타들어가는 모기향처럼 둥글게 말려있었다. 그 옆에는 흠집이 가득 난 모형 틀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묵직한 누르개가 자리해 있었다. 나무 막대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 통도 놓여있었는데, 꼭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면 모습을 드러내는 막대와 모양새가 비슷했다.
물통에서 국자를 꺼내 물기를 탈탈 털어 열선 위에 올려놓으면 달고나를 만들 준비가 된 것이다. 손때 묻은 100원짜리 동전을 기계에 연달아 집어넣으면 국자 밑 열선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국자가 달궈지고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사라지면, ‘설탕’이라고 적힌 버튼을 누를 차례이다. 버튼을 누르면 한 줌의 설탕이 국자 위로 소복이 쌓인다. 이제부터는 나무 막대를 비장하게 꺼내 들고 설탕이 타지 않게 감시해야 한다.
가만히 국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설탕 언덕의 가장자리가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때를 참지 못하고 나무 막대로 설탕을 건드리면, 설탕이 금방 타버린다고 그때는 우리끼리 그렇게 얘기했었다. 설탕을 건드리고 싶은 유혹을 꾹 참고 기다리면 어느새 설탕 언덕이 점점 내려앉으면서 투명하게 녹는다. 이때부터는 나무 막대로 가장자리부터 살살 건드려서 설탕이 타지 않고 잘 녹게끔 해줘야 한다.
어느새 하얀 설탕 입자들은 사라지고 옅은 노란빛으로 녹은 설탕물만 남았다면,
이제는 바삐 움직여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다’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국자 위로 소다가 한 꼬집 내려오면, 나무 막대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설탕물을 휘저어야 한다.
어느덧 설탕물은 불투명한 호박색으로 물들더니, 점차 연한 캐러멜빛으로 변해가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거품이 넘쳐 흐를 듯 가득 부풀었다면, 짙은 갈색이 되기 전에 재빨리 모형 틀에 부어야 한다. 액체 상태의 뜨거운 달고나를 식기 전에 싹싹 긁어 모형 틀에 붓고 난 뒤, 나무 막대를 아래쪽에 얹어 손잡이를 만들어 준다. 그러고 나서 옆에 있는 누르개를 집어 원하는 힘의 강도로 지그시 누른다. 힘을 살짝 주어 누르면 작지만 두툼한 달고나, 힘을 조금 더 준 상태에서 누르면 얇지만 커다란 달고나가 된다.
지금은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다른 식구들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다. 덕분에 본가를 방문할 때면, 아직도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동네를 거닐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때처럼 우리 집 현관에서 나와 곧장 왼쪽으로 걷다가 사거리 모퉁이를 크게 돌면, 추억 속 달고나 기계 대신 GS25가 파리한 모습으로 자리해있다. 기억이 흐릿하더라도 분명한 건, 달고나 기계를 놓아두었던 가게는 그보다 더 푸근하고 따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