빕스 생일파티

응답하라 2000

by 조하담


저마다 뷔페를 즐기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좋아하는 음식부터 공략하는 사람, 야채로 가볍게 시작해서 고기로 넘어가는 사람,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본 뒤 입맛에 맞는 것들을 골라 즐기는 사람. 어떤 방식으로 즐기던지, 중요한 건 뷔페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실컷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뷔페가 오랫동안 만인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요즘은 적은 양이라도 양질의 음식을 추구하는 파인 다이닝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한때 뷔페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빕스 생일파티.


초등학교 때, 운이 좋으면 같은 반 친구들 중 한 명쯤은 빕스(VIPS)에서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빕스는 평소에는 잘 가지 못하는 고급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 보다도 빕스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더 기쁘기 마련이었다.


주말 점심에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면, 나는 아침부터 쫄쫄 굶은 채로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어머니는 평소 아껴두신 분홍색 니트와 가디건, 모직 스커트를 꺼내 입혀주셨다. 옷을 다 입은 후 어머니 앞에 뒤돌아 앉으면, 어머니께서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부드럽게 머리를 매만져 주셨다. 빗으로 곱게 빗어주신 머리에 머리핀을 딸깍 꽂아주시면서, “음식 급하게 먹지 마라”,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몇 번이고 일러주셨다.


현관문 바깥에서 희미하게 차 엔진음 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생일파티에 갈 시간이다.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다른 한 손에는 어머니께서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손수 포장해 주신 생일 선물을 쥐고 차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이 빕스를 향해 가는 설렘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빕스의 메뉴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스테이크처럼 따로 주문해야 하는 메뉴들이고, 다른 하나는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뷔페식 샐러드바였다. 빕스는 특히 샐러드바가 인기 있었는데, 하얀 접시가 겹겹이 쌓여있는 곳에서 접시를 집어 들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원하는 음식을 덜어 먹는 방식이다.


친구 어머니는 도착한 아이들을 기다란 테이블로 데려가 차례대로 앉히셨다. 아이들 앞에는 새하얗고 둥글넓적한 접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마지못해 테이블 모퉁이에 앉았지만, 자꾸만 어깨너머 샐러드바에 눈길을 빼앗겼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도, 눈길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샐러드바에 머물렀다.



빕스에서 내가 가장 기대한 건 의외로 피자나 치킨이 아닌 리치였다. 단단한 껍질을 벗기면 뽀얀 과육이 동그랗게 드러나는 달콤한 리치. 리치는 보통 냉동 보관되어 해동이 덜 된 채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껍질을 까느라 손끝이 빨개져도 시린 줄 모르고 리치를 연거푸 입에 넣었다. 크고 동그란 리치를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터져 나오면서 커다란 씨앗 하나가 살짝 씹혔다. 그럴 때면 입 속에서 조심스레 씨앗을 골라 손 위로 톡 뱉어냈다.


그다음은 양송이 수프였다. 뭉근하게 졸인 크림 속에 잘게 조각난 양송이.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으면 크림의 부드러움과 양송이의 식감이 알알이 입안 가득 퍼졌다. 나는 뜨끈한 수프가 넘어가면서 뱃속까지 따뜻해지는 감각에 집중하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은, 뷔페에 가지 않아도 이 두 가지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먼 나라에서 재배되는 리치는 온라인 커머스를 통해 하루 만에 배송받을 수 있고, 뷔페 양송이 수프와 비슷한 맛을 내는 인스턴트식품도 근처 슈퍼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도 뷔페에서 조금씩 덜어 먹는 그 맛이 나지 않는지,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뷔페가 주는 행복은 단순히 음식에만 있지 않은 것 같다. 친구들과 잊지 못할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하고, 바빠서 따로 끼니를 때우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뷔페는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공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뷔페에서 풍기는 따끈한 음식 냄새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북적이는 웃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따스한 분위기가 그립다. 그 안에 깃든 추억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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