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브라질리에 특별전’
나의 20년산 운전면허증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동네 아는 길만 겨우 다니면서 사고 경험은 다채롭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평일 오전. 오늘부터 1회차를 맞는 셀프 문화데이다. 20분 남짓이지만 서울로 시계를 넘는 운전대를 잡으려니 중간에 절대 바꿀 수 없는 선곡을 미리 준비한다. 어깨 위로 긴장을 잔뜩 싣고 조성진이 연주한 ‘비창’을 재생했다. 와중에 피아노 선율은 미간에 주름을 새길만치 섬세하고 아름답다.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꿀 땐 일부러 볼륨을 낮추기라도 한 듯 건반 소리가 귓등에서 튕긴다. 11시 도슨트를 꼭 듣고 싶은 급한 마음이 엑셀을 밟았다 떼었다 한다. 복잡한 차로를 지나서야 다시금 베토벤이 들려온다. 스치듯 음악가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얼마나 연습하면 조성진만큼 칠 수 있을지로 시작해 그간 관심 한번 둔 적 없던 베토벤의 인생사로 궁금증이 이어졌다. 책을 좀 사야겠다.
빨간불에 멈춰 선 동안 곧장 서점으로 방향을 꺾을 듯이 클래식에 열중하고 ‘무사히’ 주차장에 당도했다. 이름도 처음 듣는 화가의 전시를 보려고 일부러 나선 길에 음악을 유난스레 떠올리며 가다니 사유의 흐름은 참으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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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기 시작한 건 아이를 키우면서였다. 갈 데도 없고 함께 다녀오면 뭐라도 한 것 같은데 모르고 봐도 그냥 좋아서 미술관을 종종 찾게 됐다. 티켓을 끊고 부랴부랴 입장하니 유명 도슨트를 들으려는 관람객이 액자 뒤로 무성히 늘어섰다. 첫 작품 해설이 한창이었다.
“그림과 음악의 본질은 하나에요. 위로와 아름다움.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음악의 생생함을 회화로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죠.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을 정말이지 사랑했어요.”
사람들 사이로 작품은 보이지도 않는데 그만 뜨겁고 뭉클한 것이 차올랐다. 예술이라곤 알지 못하면서 하필 베토벤을 들으며 그림을 보러 온 내가 어쩐지 사랑스러웠다. 아무 일도 아닌데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일. 혼자 미술관에 왔다.
삶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예술’ 아닌가요?
1929년에 태어난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한국 나이 95세의 살아있는 전설. 프랑스 미술의 황금기 정신을 이어받은 마지막 화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으며 그림을 그렸고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영감이 떠오를 때면 하루 12시간씩 붓을 잡았다. 그에게 예술가적 책임이란 신께 받은 자신의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을 전파하는 것. 할아버지가 된 거장은 말한다. “삶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 조금의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고, 천국에 붓이 많았으면 좋겠다.” 고.
혼자 온 호사를 누리며 한 점씩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어느 그림 앞에 한참을 머물기도 했다. 삶을 돌아왔기에 예술 앞에 출렁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빳빳이 굳은 몸으로 처음 운동을 시작하면 얽히고 성긴 근육은 자극점을 느끼지 못한다. 단단하고도 유려한 속근육을 키우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나의 감각은 이제야 조금씩 예술에 반응한다. 치열하게 살아갈 땐 가장 뒷전에 서게 되는 것이 예술이지만, 의술도 손 쓸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몫 또한 예술뿐이다. 창조와 변형을 통해 삶을 향한 열린 눈을 제시하는 것.
여전히 기법이나 화풍 따위 알지 못하는 문외한으로 그림을 본다. 풍경, 인물 무엇을 그렸는지 보고 지극히 취향에 달린 색감의 조화를 보며 작품의 해설을 본다. 작품 연도와 제목을 확인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그냥 그런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본다.
우리가 사랑할 것은 그저 예술과 가까운 이들.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평생토록 그림을 그린 노장의 화가가 내 마음과 같은 것을 지녔다. 내 마음이 그와 같은 것을 품은 쪽에 가까울지도. 여튼 아무도 모를 놀라운 발견을 하고서 속 안에 격한 감탄을 한다. 방향성을 확인받을 때의 짜릿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인생은 힘들고 잔인하고 짧은 것이라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려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그림을 통해 하려는 것이다.” 그가 회화를 고집했던 이유는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함이었다. 평생을 들어 자연과 음악, 아내와 일상을 그려 온 신념은 생의 소소한 행복을 기록하는 것에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그렸고, 현대미술로의 전환을 원치 않았던 그의 세계는 특별하지 않은 듯 지나가는 소중한 시간들을 붓과 색으로 남겼다. 아름다운 빛이 절묘하게 비추던 어느 날의 풍경과 기억. 그림으로 붙든 찰나의 감정을 우리도 온전히 느낀다. 나와 가족의 웃음 만발했던 하루를 떠올리기도 한다. 또 다음 세대가 영원히 그것을 본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차창에 닿는 봄볕을 맞으며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전시회를 향하던 길. 수도 없이 들어왔던 익숙한 선율의 제목이 베토벤의 ‘비창’임을 분명히 알게 된 길. 그림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일행처럼 걸음을 옮기며 가슴이 지긋했던 일. ‘앵발리드의 콘서트’라는 작품 속, 그랜드피아노 위로 솟아나는 음악의 색채를 한참 들여다보았던 일. 아이가 좋아하는 바이올린을 떠올리며 엽서 한 장을 사고 산미 가득한 라떼를 마신 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어서 이 순간을 글로 쓰고 싶어졌다. 이유는 다르게 모든 것이 좋았던 오늘의 시간을. 앙드레의 회화처럼 나의 하루는 한 폭의 글로 남겨질 것이다. 그날의 기분과 날씨, 고민하며 걸친 가디건, 내가 본 그림과 옷깃을 스친 사람들. 나의 글도 어느 훗날 예술로서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