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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Jul 11. 2023

서른여덟, 미술학원에 간다

그림공방




“뭐 그릴지 생각해 보셨어요?”     

“아.. 뭘 그리면 좋을까요?”     

“아..”     


 선생님은 말없이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몇 장 보여준다. 아, 이런 걸 그리는 건가. 그렇다면 made in 내 것 중에. 소박한 주체 의식이 발동해서 직접 찍은 11년 전 이탈리아 여행 사진 몇 장을 골랐다. 예술의 담장을 넘나드는 재미가 좀 붙었지만 그리는 것은 다른 얘기다. 더욱이 미대 나온 선생님이니까 타고난 감각으로 일찍이 외길을 걸었을(것으로 추정되는) 세월 앞에 짐짓 움츠러든다. “이런 걸 그려도 될까요?”      


 “무엇이든 그리면 돼요.” 노래방에 가도 그럴싸한 애창곡이 없는 축이다. 머쓱한 눈길이 좁은 공간을 헤매다 벽에 붙은 인기가요 목록에서 골라낸 반가운 선곡 같은 것. 충동적으로 떠오른 풍경을 사진첩에서 길어 올렸다. 꿈 같은 청춘과 황홀했던 도시의 순간을 그리자. 열한 살 이후 내 발로는 처음 찾아간 그림 공방에서 난 베네치아를 만나기로 했다.     




 그렇다. 하다 하다 미술학원에 갔다. 이틀을 연달아 가장 친한 회사 동기를 만나고 내면 녘의 갈대는 여지없이 휘청였다. 다들 견디며 사는데 나는 뭐가 그리 남과 달라서. 완벽주의 따위 부단히 내려 놓았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무엇 하나 밀고 나가지 못한 성격 머리가 원망스럽다. 아귀과 맞지 않아서. 얼마 만에 수익이 되고 성과가 날 수 있을지 조바심에 얄팍한 방법만 기웃거리다 결국 차지 않아서.


 가장 뜨거웠던 글쓰기가 멈추었다. 맥없이 쳐진 무더운 날씨처럼 자신감마저 털썩 주저앉아 있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복직 계획의 수립 대신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향해 본다. 답은 거기 있겠지. 강을 건너왔음을 인정하는 그 한 치의 감정이 내게는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거라도 인지하고 있음이 다행일테지.      


 원데이 클래스로 방문하였더니, 비교적 쉽거나 완성작이라 뭐라도 들고 갈 만한 펜 드로잉과 오일 파스텔을 권하신다. “그래도 아크릴 물감으로 제대로 그려볼게요. 경험이 전혀 없는데 가능할까요?”

비루한 도전 정신이지만 일단 닥치면 열심히 하는 모범생 습성이 고개를 불쑥 내민다. 한 달 4회권 수업을 결제했다. 잘 그려볼 테다. 캔버스를 앞에 두고 4B연필을 손에 잡으니 미소가 씩 번진다. 맞게 찾아왔네. 그거면 충분하다.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선생님은 이따금 등 뒤를 지날 뿐 자유롭게 그리는 분위기였다. 붓질 대신 물감 짜는 법 정도를 배운다. 근본 없는 예술가의 혼 비슷한 것을 담아 첫 채색을 해본다. 제자리 모를 그림자 사이로 수줍게 흉내 낸 명암이 스스로도 우습다. 그런데 이거 재밌다. 물을 적시고 색을 섞고 붓을 잡는 힘과 각도만으로 셀 수 없는 표현이 가능하리란 것을 깨닫는다. 평생 모를 수도 있던 것. 방금 칠한 빛깔을 다시는 똑같이 만들 수 없으리란 오묘한 불안감을 직접 아는 것.


 선생님이 다가설 때면 지적에 민감한 K-학생은 자동 반사적으로 붓질을 멈추지만. 관심 그 이상의 것도 아닌 선생님의 걸음은 내가 붙들지 않는 한 책상을 둘러 몇 바퀴 원을 그릴 뿐. ‘잘’ 그리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잘’이란 것의 기준은 우리 중 누구도 합의한 바가 없으니까. 옆 사람에게 선생님의 시선이 옮겨 가면 다시금 이어 그린다. 어른의 취미 생활이라 그럴까. 그런 존중감이 문득 좋았다. 뭘 해도 좋으니까. 정답은 없으니까. 이런 것도 예술인가. 비록 사진을 두고 그리는 그림이지만 어디까지나 재현이 아닌 표현임을. 서른여덟에 배우는 그림은 그런 것이라 좋았다.     


 이 은근하고도 짜릿한 것을 왜 지금서야 해볼까. 그려보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어려서 미술학원에 다니며 재밌어 본 적도 소질을 인정받은 적도 없어 본 나는 왜 새삼스레 이런 것에 마음을 쏟을까. 지극히 소박하지만 또렷이 충만한 기운으로 시간에 몰입했다.

 공방을 나서며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지금의 내가 가장 선망하는 것은 단연 ‘이전과 다른 나라는 것.’

 전과 다른 나를 발견할 때, 그런 상황 속의 나를 마주할 때 가슴이 뛰고 있음을. 안 해 본 것을 하고 비효율일지 모를 비 부가가치적인 경험을 하고 끈질긴 고민 끝에 전의 생각과 방식을 뒤엎는 나를 만날 때. 답을 찾아가는 안도와 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임을.


 회사는 개뿔. 나는 변해야 사는 사람임을 재차 확인하고만다. 11년 전 베네치아를 여행하던 그때의 어린 내가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지금이 아니면 어차피 알 수 없었을 것일까. 알게 된 것에라도 감사해야 할까. 이제야 그것을 알아버린 것이 그저 품고 지나칠 수 없는 삶의 적기임을 믿고 싶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고요하게 소용돌이치는 나의 인생은 희뿌옇게 서려있지만, 변화의 순간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기회이기를. 얼마간의 씁쓸함으로 끝나지 않기를.


 ‘인정’이라는 단 두 글자의 벽을 넘는 것은 역시 어렵다.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뒤에 밀어 둔 나의 숙제다. 오늘은 다음 시간에 다리 넘어 건물을 무슨 색으로 칠할지 그 숙제만 고민하여야겠다. 그림의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간을 되돌려]이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썼다. 미술학원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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