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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Mar 22. 2023

[07] 누군가의 자부심으로 살아간다는 것

부모에게 퇴사를 말할 때




 부족한 잠을 깨워 여느 아침과 같이 산책을 하고 밥을 차린다. 서로의 마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눈물을 섞어낸 다음 날도 우리는 일상을 산다. 등교와 등원, 출근을 차례로 돕고 천천히 집안을 정돈한 후 여전히 퉁퉁 부은 얼굴로 집을 나선다. 3월의 바람은 차고 번지는 볕들은 따사롭다. 간밤의 힘들었던 대화는 매듭짓지 못한 채 곱씹을수록 상처로 아린다. 그럼에도 봄의 기운을 받아 피어나는 가지의 꽃들에 눈길이 머문다. 푸석한 마음을 달래려 선곡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곡이 유난히 아름답게 들린다. 사계 중에서도 「12월, 크리스마스」가 차분한 위로가 되어준다. 이 와중에 보는 것 느끼는 것을 다 한다. 괜찮은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 거구나. 하고 남의 일처럼 보듬는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조심스럽게 다시 선언한 것은 5년 만이었다. 지옥의 심화 버전을 견디어 봤지만 남은 것은 닳고 닳은 몸과 마음, 돌릴 수 없는 후회 정도였다.

 “잘했다. 그런 회사 때려치우고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까지는 아니어도,

 “네가 정말 힘들었구나. 우리가 몰랐다. 좀 편하게 살아도 된다.” 그같은 위로가 절실했다.

 살림은 유복했지만 열 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를 아버지 삼아 부정을 모두 채우지 못한 채 살아온 나의 아빠. 생활력은 강하지만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와 두터운 부모 품 안에 귀여운 인형처럼만

키운 두 딸을 커다란 사업 실패 속에 지켜내야 했던 나의 아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다시 일어섰다. 사위 손녀까지 줄줄이 달고 지금도 아빠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아빠가 지탱한 삶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생각한다. 온 마음을 다해 평생토록 존중할 것이다.

 “휴직하고 놀더니 계속 놀고 싶지. 그 좋은 회사를 못 견디고 너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믿지 마라.” 그런 아빠의 세계가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네가 엄마 자존심이고, 아빠 자부심인데. 두 분은 눈물을 보였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거고 다음 날까지도 식탁에 홀로 앉아 사무실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저녁 밥상에 마주 앉아 ‘퇴사’를 하겠다는 우리 잘난 딸을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어려서 속을 썩일 걸 그랬다. 알아서 공부 잘하고 대학도 시험도 단번에 합격해서 취업과 결혼도 꼭 맞게 하고 제때 아이들 낳아 무엇 하나 뒤처지는 속도가 없었던 자랑스러운 내 딸. 그런 딸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주기를. 그렇게 보란 듯이 살아주기를 애타게 원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나만 견디면 모두가 평온할 텐데.

 그만 진창에 다시 뛰어들고 싶어졌다. 부모의 자부심이 되어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지옥인 줄 아는 길을 처연하게 가는 것. 반대로 자식을 나의 자부심으로 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너를 위한다는 생각에 갇혀 지옥 불 속으로 자식을 내모는 끔찍한 실수를 부모가 하게 되는 것.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뭐가 되길 바랐어?” 엄마는 단박에 답한다.

 “이런 어른. 너 지금 같은 이런 어른이지.”

 그렇다. 엄마에게 나는 이상향이다. 엄마가 평생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우주를 부수는 것 같다. 심장이 저릿했다.

 “잘 살게. 잘 살려고 그래. 그 행복 안에 엄마 아빠가 걱정하는 돈도 물론 있을 거고. 잘 살게, 엄마.”

 딸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믿어 달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괜스레 조바심이 날 것 같아서 그럼 또다시 무언가를 잘해 보여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잘 살 거라고 말했다.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이니까.     


 다음 날 엄마가 두고 간 반찬에 혼자 점심을 먹는데 참으로 염치없이 엄마 밥은 맛있기도 하다. 처량한 신세라도 연출하려 했는데 한 숟갈 두 숟갈 자꾸만 밥을 퍼다 얹었다. 처음부터 한 공기 수북이 뜰 것을. 전화가 왔다. 어제 그러고 잘 잤냐 아픈 데는 없냐로 운을 떼어서, 도대체 뭘 하려 그러느거냐 힘든 건 이제 나아졌냐. 엄마한테는 숨기지 말고 얘기 좀 해봐라. 그래야 도와주지. 아이들 키우고 너는 언제든지 일할 수 있으니까. 그 일은 마음만 먹으면 계속할 수 있는거니까. 엄마는 나에게 뭔가 대단한 계획이 있어서라고 마지막까지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딸이 그럴 리 없지.     


 하지만 “엄마, 지금은 정말로 말할 게 없어요.”          




*

 하필이면 국제행복의 날이었다. 연례 행복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57위의 최하위권을 맴돈다. 스스로 삶의 질을 종합 평가하여 매긴 행복 점수다. 핀란드는 6년째 1위에 올라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반대편 그 나라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오후의 햇살이 퍼지자 봄다운 따스함이 반갑게 스민다. 둘째가 하원하여 언니를 기다리며 동네를 산책했다. 눈을 맞추며 손까지를 끼고 좋아하는 근처 카페에 가서 마들렌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엔 친구를 만나 함께 그네를 타며 아이가 꺄르르 웃는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여섯 살, 아홉 살이 된 우리 아이가 자라나는 시간들을 곁에서 본다. 가족과 공간을 돌보고 망가졌던 몸과 마음을 위해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아빠가 논다고 표현했던 나의 삶은 현재 지극히 충만하다.

 퍼즐이 맞추어지듯, 성장 과정 속 돈에 관한 메시지가 그림자처럼 존재하였음을 깨달았을 때 경제활동의 책임을 끝까지 내려놓지 못한 결정의 순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제 손으로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히 새로운 시작을 무겁게 만든다. 언젠가 우리 가정에 예기치 못한 일이 닥치고 정말이지 돈이 없어서 자식들을 책임질 수 없는 불안을 상상한다. 이제까지 벌어온 만큼 미치지 못할 현실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자존심 지킬 수 없는 일들을 하며 생계를 부양해야 할 ‘만약’이 두려워서 지금의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토록 선명한 행복을 붙들고 싶다. 더 이상 나를 믿어달라고 말할 상대는 없다.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 한 사람의 몫이다. 엄마에게 말했듯 ‘ 잘 살아갈 ’ 것이다.


 나의 삶은 잘난 회사 없이도 빛날 것이다. 아빠엄마의 삶도 내가 없이 빛나길 바란다. 그럼에도 두 분의 얼굴을 떠올리면 서른아홉에 진짜 행복을 찾겠다며 돌아선 길이 여전히 죄스럽다. 부모에게 퇴사를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

 또 하루가 지나고 이번에는 늦은 무렵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와 저녁을 먹고 동네를 산책 중이란다. “우리 이제 괜찮다. 처음에는 서운했는데 우리 이제 괜찮다. 몸 아픈데 없이 재미나게 살자.”

 엄마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영원히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두 분은 딸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직감적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름을 듣고도 잊어먹고 말 그놈의 ㅇㅇ회사 다니는 우리 딸, 누가 뭐라든 잘나고 잘나서 천금같이 자랑스럽던 우리 딸을 두 분은 내려 놓았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대화를 붙들고 그 속에 긍정을 캐내려 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정하고 말할 때 내가 아는 아빠와 엄마의 사소한 표정 하나까지 전화기 너머로 그려졌다. 지금껏 살아오며 숱하게 봐온 듯이, 아빠 엄마는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해낸다. 절망적인 부도를 맞았을 때도, 사위가 아픈 걸 처음 알았을 때도, 내가 십여 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겠다는 지금도 똑같은 심정으로 그것을 한다.      


 '아빠 엄마가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거 아니잖아요!' 서른아홉에 처음으로 부모 뜻을 거스르며 멋들어진 반항 한번 못한 채 우리 가족사에 한 획을 그을 조ㅇㅇ의 퇴사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화나고 서운했던 눈물과 감정들은 우리다운 그 밤의 통화에서 웃음으로 흩어졌다.

 “그래. 너 하고 싶은대로 잘 살아봐라.” 아빠 엄마로부터 응원을 획득했다. Hooray!

 오다 주웠다는 남편의 멘트와 선물이 이보다 가슴 설레랴. 비난도 부담도 아닌 격려를 기어코 받아냈을 때, 무언가 꿈틀하며 난 어쩐지 잘하고 싶어졌다. 부모에게 퇴사를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예속되고 구속하지만 독립되고도 차마 분리할 수 없는 사랑을 한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스물아홉의 퇴사 꿈나무 시절, 내 주제곡은 ‘거위의 꿈’이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참 많이도 울었다. 비로소 그 퇴사의 꿈을 실현하던 날의 우연한 선곡. 서른아홉의 아직 봄은 아니던 3월,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며 동네를 걷던 그 풍경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차고도 따스한 날의 슬프고도 경쾌했던 마음을. 조금 처연하지만 왠지 멋져 보였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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