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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승 Jul 01. 2022

01. 본질

산티아고 순례길 사색 여행기

생장피에드포(Saint-Jean-Pied-de-Port)에서 롱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피레네 산맥을 타고 약 26km. 아침 기온 14도.


새벽 4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잠에서 깬다. 밤새 텐트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때문에 얕은 잠을 잤다. 지금부터 나갈 채비를 마치고 텐트까지 정리하면 5시가 조금 넘을 것이다. 전날 마트에서 미리 사둔 바나나와 샌드위치를 급하게 먹은 뒤 뒤척뒤척 침낭에서 나온다. 생장에서 시작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날은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 처음부터 큰 장애물을 마주한 셈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새벽 내내 내렸던 보슬비는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다. 험난한 산길이니 더 조심하지 않으면 다칠 수도 있을 것이다. 열 한시 반부터 두 시 사이에는 프랑스어 수업이 있다. 여기부터 오늘 목적지까지는 7시간이면 충분하니 조금 서두르면 수업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들보다 일찍 출발하는 만큼 도착하면 더 편하게 쉴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캠핑장을 빠져나와 순례길을 향한 본격적인 첫 발을 뗀다.




결국 내 머릿속에 숨어서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그 질문은, 본질에 관한 것이다. 왜 살아야 하지?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간의 본질은 또 무엇일까? 혹은, 본질이 그렇게 중요한가? 본질. 프랑스에서 예술 학교를 다녔던 나에게는 꽤 익숙한 단어이다. "Alors, c'est quoi l'essentiel du projet?(대체 그 작업의 본질은 뭔데?)" 툭하면 들리던 교수들의 질문. 하지만 이 단어를 한국말로 옮기고 나니 일상에서 그리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한국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 살아가는 배경마다 물론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인들끼리 본질이 뭔지 깊게 고민해보는 순간은 드물다. 입에서 여러 번 되풀이할 때마다 단어가 점점 더 낯설어진다. 분명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제인데, 마치 처음 마주한 듯한 이질감. 내가 삶의 본질을 감히 꺼내볼 수 있을까?


내가 공부했던 디자인의 본질은 사용자 경험이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상대방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 시각적 경험인가? 청각적 경험인가? 혹은 다감각적 경험인가? 툭하면 나왔던 La forme suit la fo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도 디자인에선 필수지만, 기능이라는 것도 결국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프랑스 예술 학교를 다니면서 한 학기에 적으면 열 개부터 많으면 스무 개의 작업을 하다 보면, 정신없이 지나가는 학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각 프로젝트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제외한 나머지를 없애가면서 핵심만 남겼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많아지면 묵직한 한 방이 없는 작업이 되어버린다. 예술에 있어서 어떤 작업이 뛰어난 작업인지를 열거하고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안 좋은 작업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있다. 충분히 고민되지 않은 작업. 그리고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인 작업. 결국 아트 건 디자인이건, 본질에 집중하고 잘 다듬은 작업들이 살아남는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나? 어떤 본질이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질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속이 텅 비어 있는 작업 같다.





조금 산길을 올라가니 물안개가 너무 자욱하다. 고작 서른 걸음 앞서가는 사람도 형체가 희미하다. 오전 아홉 시가 조금 지나서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스페인에 온 걸 환영해!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면서, 로밍 요금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안내해준다. 아, 지금부터 스페인이구나. 구름 속을 오르고만 있어서 내가 어딘지도 감이 안 온다. 얼만큼 걸었는지를 알 길이 없으니 오히려 사색여행에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잠깐 커피 타임을 가진 걸 제외하면 네 시간째 쉬지 않고 걷고 있지만, 내리막이 시작될 기미는 전혀 없다. 야외에서 핸드폰 핫스을 이용해 원격 수업을 진행한 적이 몇 번 있지만, 오늘 그 꼼수는 불가능하다. 피레네 산맥 한복판에서 데이터가 빵빵하게 터지는 건 닭에게 이빨이 있다*는 말일뿐더러, 이런 악천후에 어떻게 밖에서 태블릿을 꺼낸단 말인가.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을 재보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무래도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은 지도에 적혀있는 '거리 26km'는 산의 경사는 일말의 생각 없이 지도 위에 자를 대고 그어본 게 확실하다.


*Quand les poules auront des dents (닭이 이빨을 가질 때) : '해가 서쪽에서 뜬다'의 프랑스 속담




본질이라는 문제는 분명 철학과도 깊게 맞닿아 있을 것이다. 서양 최초의 철학자는 탈레스다. 물론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철학자'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을 뿐이다. 탈레스가 그런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주장했던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가 맞는 말이라서가 아니라, 역사상 처음으로 세상에 대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꺼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학의 본질은 '다르게 생각해보기'인 걸까? 현대에 와서 대부분의 '철학 학자'들은 과거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분석할 뿐 새로운 생각을 내놓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 가라사대, 사르트르 가라사대. 이런 잡음들은 일반인들이 철학에 접근하기 더 어렵도록 만들지 않을까? 철학이 어려워질수록, 고유한 생각을 꺼내기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나? 세상을 정의하는 공식들은 고유한 생각을 꺼내기 어렵게 만들고,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본질을 묻어두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동안, 한 친구는 내가 생각하고 작업하는 방식이 너무 지치는지, 왜 그렇게 의미라는 단어를 신경 쓰냐고 내게 물었다. 그때는 그가 나를 다그치는 것 같아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내 안에는 이런 의구심이 떠올랐다. 의미가 없다면 살아갈 이유는 어디 있나?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거라고, 힘들어도 죽기는 무서워서 사는 거라고 무책임하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고, 진절머리 난다고 타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죽는 게 별로 무섭지 않고, 태어난 김에 살기엔 삶이 꽤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스스로가 소중하다고 여기고, 고집할 수 있는 가치가 없다면 어떻게 자기 존재가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 데도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죽은 시체로 살아가는 게 더 위태로운 삶이 아닐까?





다급함은 늘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수업 시간이 삼십 분 남았을 때 겨우 코스의 정상에 도착한 나는, 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첫 번째 수업을 미뤘지만 그다음 수업은 반드시 진행하겠다는 성급함이 원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십여 분 걷고 나서 길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제 시간 안에 원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둘러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은 잘못된 길 안쪽으로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들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는 수업을 취소하기 위해 학생에게 연락하고 지도를 확인했을 때였다. 뭐가 그리 다급했을까. 순례길은 그런 곳이 아닌데. 시작한 뒤로 이제 첫 번째 코스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내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또 나만 성급했다. 본질에 대한 문제도 성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찌 됐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나에겐 앞으로의 내가 이렇게 무너지지 않게 도와줄 어떤 본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던 삶이다. 뭐라도 나를 붙들어 매 줄 그 무언가가 없다면 억지로 삶을 쥐어도 반드시 꼬구라질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이런 문제들에 편법을 부릴 수는 없다. 쉽게 만든 이유는 변명이 되어 금방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의 산행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해야만 한다. 급하거나 피곤하다고 긴장이 풀리는 순간 발목이나 무릎을 다칠 수 있다. 내게 필요한 본질을 찾는 방법은 여기에 있었다. 내가 이 순례길을 걷는 이뉴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가로질러 보겠다는 성급함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도 좋으니 하나하나 생각하자고 시작하지 않았나.


2022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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