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남의 마음만 돌보느라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해
끼잉 끼잉~ 개처럼 앓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옛날 옛날에 자기 마음을 꽁꽁 잘 숨기는 어린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어린 개는 낮에는 잘 놀아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즐거웠지만, 밤이면 혼자 끼익 끼익 앓았답니다.
어느 날, 봄날의 개에게 마음이 속삭이듯 물었어요.
얘, 너는 왜 목줄을 끊고 도망가지 않니?
그러자 봄날의 개가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 오래 묶여 있어서
목줄 끊는 법을 잃어버렸어!” 동화 [봄날의 개] 내용 중 일부 각색
https://www.youtube.com/watch?v=pfvij_g8WJI
책임감과 배려하는 마음은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하고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책임감이나 배려가 의무가 되면 봄날의 개를 묶은 목줄과 같아진다. 처음에는 못 느끼겠지만, 목줄의 힘이 반복되어 결국 나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만든다. HR 담당자라는 역할 의무의 강요는 ‘나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게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듯, 아니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밤에 혼자 남은 개처럼 끼잉 끼잉~ 혼자 앓지 않으려면 말이다. 스스로를 방치하면 마음도, 허리도, 어깨도, 머리도, 목도 아파온다. 결국 병이 난다.
직장에서 힘듦의 크기를 따지자면 몸 힘든 것보다 마음 힘듦이 훨씬 크다.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직장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각자 개성이 강한 사람들과 협력하여 일의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생계와 직결된 직장에서 잘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지금, 오늘을 살아내기 바쁜 직장인이자 책임감이란 목줄을 매고 있는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마음을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SNS나 소셜미디어에 축제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걸 모든 사람들의 진짜 삶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숙제에 허덕이는 인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축제까진 아니더라도 숙제 같은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먼저 살피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 마음 살피는 방법은 ‘감정 알아채기, 감정 이해하기, 감정 단어로 표현하기, 감정 토닥임의 4단계로 되어 있다.
내 기분이 지금 어떻지?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감정 알아채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점심 식사 후 잠시 산책하면서, 퇴근길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퇴근 후 씻으면서도 할 수 있다. 그냥 잠시 지금 내 기분이 어떻지? 묻기만 하면 된다. 좀 기분이 우울한데? 기분이 좀 괜찮네! 에너지가 넘치네! 방전된 것 같아! 모든 걸 외면하고 싶어! 평안하네! 하고 현재 기분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사실 감정을 알아채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바쁜 일상에서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할 여유가 없다. “좋다! 싫어! 화나! 스트레스받아! 킹 받네! 이런 단어 말고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또 있나?” 할 정도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다고 배워왔다. 이 모든 이유들이 모여 감정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면 조절할 수 없다. 감정은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소통의 대부분은 비언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내 감정이 고스란히 내 말투와 표정, 느낌으로 전달된다. 감정이 더 격해진 후 너무 큰 불덩이, 진짜 깊은 우울, 깊숙한 마음의 상흔과 만나기 전에 일상에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왜 이런 감정을 느끼지? 스스로 돌아본다. 어떤 상황이나 말, 경험에 내가 민감한지, 기분 좋은지, 그런 감정을 언제 느끼는지, 왜 느끼는지! 그 감정 뒤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스스로를 관찰한다. 예를 들어 회의 참석 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면 왜 그렇지? 아! 내가 잘하고 싶었는데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속상하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유능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네! 그런 마음이 들면 오히려 위축하고 회피하고 숨는 행동을 하는구나! 이렇게 내 감정을, 그 감정으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옳고 그름’, ‘좋고 나쁜 것’이라는 판단이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정보다. 느끼면 안 되는 감정이란 없다.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을 대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야 내가 원치 않는 감정을 덜 느끼고 끊어낼 수 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뭉뚱그리지 많고 정확한 단어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감정 ‘알아차림’의 시작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 10가지를 떠올려보자. 생각보다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면 아래의 단어들을 활용해 본다. 생각보다 많은 감정 단어들이 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 정확하게 표현하면 감정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짜증 나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거였구나! 투정 부리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는 말로 위로받고 싶은 것이었구나! 화난 것이 아니라 실망한 것이었구나! 를 알게 된다.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게 되면 그 감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게 된다. 짜증 나는 내 감정이 사실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내 행동이 달라진다. 감정에 정확하게 이름을 붙이기만 해도 변화가 시작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감정을 받아들인다. 어떤 감정이든 “괜찮아!”그렇게 느낄 수 있어!라고 나의 감정을 허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 “잘하고 싶었구나, 불안했구나!, 내가 여유가 없어 그렇게 행동했구나, 화가 났구나, 실수해서 마음이 상했구나, 실수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구나, 잘못한 것이 아닌데 억울하구나, 구성원들 1:1 대응이 힘들었구나, 다양한 요구에 지쳤구나, 잘하고 싶었구나!” 같은 나의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눌린 감정을 토닥이는 것이다. 감정은 바람이다. 세찬 바람이 지나가고 평안해져야 해결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싫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한다.
때로는 관심을 덜 갖도록 노력하거나,
그 상황을 다시 만나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거나,
회피 대신 대면해서 내 마음을 표현해 본다.
나를 위해 좋은 감정은 더 많이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두 팔로 나비 포옹을 하며 도닥여 준다.
벗어나고 싶은 감정엔 용기를 내어, 묶인 목줄을 끊듯
습관적으로 움직였던 고리를 끊어 준다.
감정을 인정한다는 것은 꼬인 감정으로 확대 해석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후배에게 어떤 말을 들어서 기분이 안 좋네!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 나의 마음을 인정하는 것은 좋지만 ‘그 후배 이전부터 나를 무시하더니... 내랑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왜 그런 거야! 늘 인복이 없지!’등으로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러면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내 마음과 생각이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오히려 감정을 객관적인 정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의외로 쉽게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감정은 정보다. 내가 말하고 듣고, 보고, 경험하는 외부 자극에 대해 나의 뇌가 어떻게 해석하고 정리했는지 표현하는 것이 감정이다. 감정은 내가 어떤 측면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것이 곧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알아차려야 나를 위해 조절하고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