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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저씨'의 버스가 남긴 버릇

[양평 사람 최승선 015] 단골 기사님들이 있었다.

by 최승선

중학교 때,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기사님의 얼굴이 보일 때쯤 누군가 "착한 아저씨다!" 외치는 날들이 있었다. 버스에 타는 손님들 모두에게 "안녕하세요", "조심히 가세요" 인사해 주시던 기사님이었다. 표현력의 한계로, 가장 좋은 말을 붙여 "착한 아저씨"라 부른 기사님이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 메뉴를 미리 골라두고 서로 주문을 미루던 아직 사회성이 미숙하던 청소년들은 그 기사님의 친절함이 실망하는 날이 없길 바라며 화답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인사하자!"라고 했던가. 수줍은 마음에 먼저 인사를 건네지는 못하고, 먼저 걸어주시는 인사에 할 수 있는 환한 미소로 "안녕하세요!" 느낌표 붙여 인사하던 마음은 뿌듯함이었다.


함께라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하던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당연했던 '착한 청소년'들은 '착하지 않은 아저씨'들에게도 인사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대꾸조차 없는 날에도 다시 용기를 내어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받기를 기대하고 주면 안 된다는 가르침 탓이었다. 그 마음으로 인사하는 '착한 아저씨'를 본 덕이었다.


우리 때문이었을까? 5년 넘게 꾸준히 인사를 하던 노선에 인사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들도 각자의 이유로 인사를 하는 것일 텐데, 그것이 꼭 우리 때문이라고 느껴졌다. 그때마다 '착한 아저씨'를 떠올렸다. 아저씨는 알까? 아저씨가 우리에게 '착하게' 인사해 줘서, 이 버스에선 인사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걸? 꼭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만 굳이 사실을 알 필요는 없으므로 여전히 그렇게 생각 중이다.


그 '착함'이 친절함이고, 상냥함이라는 걸 자각하기 전에 한국 대중교통에서의 인사가 아주 낯선 일이라는 걸 먼저 자각하게 됐다. 특히, 도시의 버스에서 인사를 하면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정면을 보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내심 놀랐다는 게 느껴진다. 일행이 있을 땐 하차 후 어김없이 2초 간의 침묵에 곧이어 '착하네~'라는 말을 듣는다.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인사할까 말까 하다가 그보단 기사님이 기분 좋길 바라며 또 인사를 한다.


'착한 아저씨'때문에 중학생이었던 나는 버스 타는 일이 더 즐거웠다. 버스를 타는 동안, 내려서 걷는 동안 그 기분 좋음이 지속됐다. 고등학생이 되어 아주 가끔 버스를 타게 되고, 또 그보다 더 가끔 '착한 아저씨'를 만나게 됐을 때 몇 년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착한 아저씨'라는 사실이 날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러니 친절할 수밖에. 고작 인사 한 마디로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돌아오지 않는 인사라 해도 상대방의 안녕을 바라는 게 나한테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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