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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음가짐

[양평 사람 최승선 014] 시내에 갈 땐 마스크를 씁니다

by 최승선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무슨 전공이냐 묻는다면 껄껄 웃으며 '에어리어디자인매니지먼트요'라고 답한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고르고 있는 얼굴을 보며 '지역디자인경영인데요, 도시 관련 전공이에요. 경험디자인 전공이고요. 이해하기 어려운 전공이긴 해요'하며 또다시 껄껄 웃으며 답한다.


아무튼 이 전공으로 내가 검색하는 논문 키워드는 '소도시', '전입', '로컬' 정도가 된다. 그렇게 읽은 논문 중 흥미로운 논문이 있는데 상경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뿐 아니라, 상경 후의 삶이 어려운 사람들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실패를 선언하는 느낌이랄까?


KakaoTalk_Photo_2025-01-14-21-51-36.png 엄창옥, 노광욱 and 박상우. (2018). 지역청년의 정주 및 귀환 결정요인 -대구지역 사례분석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연구, 26(3), 259-283.

비슷한 내용이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도 나온다. 제주도를 떠난 세 자매가 제주도로 돌아올 땐 서울에서의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이혼을 했다거나, 애가 생겼다거나, 온오프라인으로 매장당했거나. 그들이 돌아온 이유는, 좀 더 정확히는 '내려온' 이유는 작은 마을에 반나절이 지나가기 전에 퍼진다. 고향으로 도망쳐봐야 타박 같은 위로, 위로 같은 타박들 속에서 견디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행히(?) 나는 성공이란 걸 해본 적 없으므로 실패해서 내려왔단 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심지어 나에게 귀향은 'Dream come true'였다. 또 다행인 건, 내 대학원 전공을 우리 가족들 중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으므로 진로 선택으로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다. 또또 다행인 건, 가족들과 따로 살아 고요한 일상을 살 수 있다. 그런 나에게도 귀향을 결정할 때 큰 장벽이 있었으니,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이었다.


소도시, 시골에선 아주 여러 번의 우연한 만남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 사람이 10년 만에 만난 사람이기도, 예전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얼굴은 너무 잘 알지만 한 번도 인사한 적 없는 사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반갑진 않지만 놀라운 사람들, 반갑지만 오랫동안 연이 끊긴 사람들, 인사하고 싶지만 나의 근황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라식을 하기 전엔 일부러 안경을 벗고 다녔다. 모른 척한 게 아니라 못 알아봤다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애매하게 친한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대하느니, 뒤에서 쌩깐다 욕을 먹어도 나 스스로는 마음 편한 게 더 좋은 선택 같았다. 라식 후에는 일찍이 알아보고 피하는 전략으로 바꿨다. 사람들 뒤에 숨든, 핸드폰에 얼굴을 박고 가든, 갑자기 전화를 하든.


양평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을 땐, 누군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마음이 결정을 해야 했다. 어른이 될 기회라고 생각했다. 친하지 않아도, 연락이 끊겼어도 눈이 마주쳤으면 인사를 하는 건 굉장히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그걸 연습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작 4개월 동안 존재조차 잊고 있던 사람들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만나고 있다. 그때마다 피하지 않으려 애쓴다. 반갑게 웃고, 안부를 묻고, 잘 보내주려 애쓴다. 별일 아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지 못해 갈팡질팡하긴 해도, 그렇게 보내주고 나면 별일 아니다. 그리고 나에겐 별 일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성장한, 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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