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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비 9,200원 라이프

[양평 사람 최승선 013]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집이라 고민이 깊다

by 최승선

인천 부평에 살았다. 식사 때가 됐는데, 메뉴를 한참 동안 정하지 못하면 배달비가 무료고 양이 많았던 돈가스를 주로 시켜 먹었다. 가서 먹으면 교통비가 드는데, 집에서 먹으면 무료라니. 세상이 참 좋구나 생각하다, 도시가 좋은 거겠지- 결론 내렸다. 이사를 결정하고 무료 배달 라이프도 이제 끝이겠구나 생각하며 더 부지런히 시켜 먹었다.


이사 온 집은 본가보다는 시내와 가까워 배달 어플에서 스크롤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최저 배달요금이 2,500원부터 시작하여 최고는 15,000원까지 달한다. 이럴 걸 예상하고, 주방이 넓은 집으로 이사 왔다. 주방이 넓고 쾌적해지면, 배달을 시켜 먹기 힘들면 요리를 하겠지-라는 속 편한 기대 덕이다. 약 4달간 '요리'는 한 적이 없다.


이 집에서 배달은 딱 3번 시켜봤다. 전화 배달이면 배달요금이 안 붙는 줄 알고 시켰고, 움직일 힘이 없어 보쌈을 한 번 시켜봤고, 친구와 와인 파티를 하러 가는데 안주가 없고 포장하러 가면 시간이 늦어 회를 한 번 시켜봤다. 사는 곳이 바뀌면 사는 법이 바뀐다던데, 배달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배달 음식 줄이는 법? 배달시키기 억울한 곳으로 이사 가세요.. 배달시킬 수 없는 곳이면 더 효과적이겠죠..


처음 인천에서 독립을 했을 땐 제법 요리를 해 먹었다. 계란국도, 콩나물국도 해봤고 분홍소시지를 부쳐 먹고, 두부도 부쳐먹고, 닭갈비나 제육볶음 밀키트에 야채를 추가해 먹기도 했다. 모두 5년 전 이야기다. 5년째 나의 궁금증은 '혼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이다. 밥을 해 먹나? 반찬이랑 국은 어떻게 해 먹나? 매번 시켜 먹나? 뭘 그렇게 시켜 먹나? 근데 명쾌하게 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돌려줄 답은 없었다.


주 40시간의 근무, 왕복 통근 2시간의 삶에선 요리를 해 먹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해보니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요리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백수에게도 요리는 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가 수월하지 않다. 처리 가능한 재료들로 구성된 메뉴를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포장을 해왔다. 차마 22,000원짜리 치킨을 31,200원 주고 사 먹을 순 없어서 엘리베이터 없는 4층집에서 내려가 차를 끌고 왕복 20분 거리를 다녀왔다. 눈이 온 줄 몰라서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하마터면 아주 비싼 치킨을 먹을 뻔했네- 생각하며 들어왔다. '배달 음식', 그러니까 배달 어플에 있는 메뉴를 먹기 위한 '비용'이 도시와 시골에서 얼마나 차이가 날지도 같이 생각했다.


양평에 이사 오고 얼마 후 양평 청년들과 함께 교육을 듣고, 치킨과 피자를 먹은 적이 있다. 이곳저곳 떨어져 살던 우리 테이블의 사람들 중 높은 비율이 치킨과 피자를 너무 오랜만에 먹는다며, 너무 맛있다고 했다. 집에 배달이 오지 않기 때문에 먹을 생각 자체를 안 한다고 했다. 가족들과 같이 살고,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 오시지 않으신다고.


치킨과 피자의 접근성도 지역에 따라 이렇게나 달랐지, 생각하며 롯데리아 지수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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